“거지들에 구걸할 권리 있다”(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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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 연방법원,수정헌법 1조 적용 인정/“구걸은 비공식적인 설득 언어”/걸인측 변호사 주장 받아들여
뉴욕 등 미국의 대도시에 무주택 거지들의 수가 급증,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연방 법원이 지난달 「가난한 자들의 구걸할 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했다.
미연방 법원 뉴욕시 맨해턴 법원의 레너드 샌드 판사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구걸행위가 미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라고 판시함으로써 거지들의 구걸행위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했다.
샌드 판사는 이와함께 구걸을 위해 어슬렁거리는 것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뉴욕주 법과 버스터미널 등에 거지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는 뉴욕ㆍ뉴저지 항만청의 정책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샌드 판사의 이같은 판결은 맨해턴 무주택자들의 법률구조 센터의 소송에 따른 판결로 지금까지 구걸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치 않아온 영ㆍ미 법 전통에 큰 변화를 의미한다.
샌드 판사는 이 판결에서 『헌법적 원칙들에 대해 개인의 책무에 관한 진정한 심판은 우리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힘이 없으며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주어지는 정도』라고 말하고 『구걸행위는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헌법1조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무주택 거지측 변호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 수정헌법1조는 미 의회가 언론의 자유ㆍ발언의 자유ㆍ종교자유 및 평화적인 시위를 할 권리를 제약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치 못하도록 하고 있다.
샌드 판사는 이같은 거지들의 헌법적 권리외에 『거지들의 단순한 적선요청은 행인들에게 뉴욕시민이 가난하게 살고 생존에 필요한 기본물품도 없을 때가 있음을 느끼게 해줄 것임이 분명하다. 발밑에 깡통을 갖고 버스터미널에 앉아있는 거지들은 그와같이 여러사람들이 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지들의 구걸이 흔히 불쾌감을 주고 매우 흉측스럽게 보이지만 이는 비공식적인 설득언어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거지들의 권리를 위해 소송을 대행한 무주택자 법률구조 센터의 더글러스 라스틴 사무국장은 한달 45달러의 공공보조금을 받고있는 거지들이 생존을 위해 구걸치 않을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번 판결이 『가난한 사람을 침묵시킴으로써 미국이 사회문제를 해결할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뉴욕대 폴 체비니 교수(법학)도 『이 판결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연방법원의 인도주의 정신을 잘 대변한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미 수정헌법1조의 권위자 이자 이 사건의 피고였던 뉴욕ㆍ뉴저지 항만청의 법률고문인 플로이드 애브럼스씨는 『구걸을 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행위」대신 「언어」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이번 판결이 수정헌법 1조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 패한 뉴욕ㆍ뉴저지 항만청은 지하철과 버스터미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질서를 예로 들며 질서유지를 위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이 판결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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