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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개입한 「부실」정리에“경종”/신한투금 주식반환소송 승소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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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뺏긴 경영권 원상회복 길터/국제그룹 관련소송도 영향줄 듯
14일 서울민사지법이 85년의 국제그룹 해체와중에서 신한투자금융㈜ 1백60만주가 제일은행에 넘어간 것은 공권력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종래 공권력이 개입했던 유사한 사건 등에 대한 법원의 타성적인 판단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판결은 5공화국시절 부실기업정리 명목으로 경영권을 하루아침에 박탈당했던 기업들의 재산권 반환소송 가운데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지난날 경제질서 재편방향 및 과정에 개입한 국가공권력의 성격을 민사판결을 통해 교정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의 전사주 양정모씨와 사돈관계라는 이유로 신한투자금융을 뺏겼던 김종호 세창물산회장과 김회장의 3남 김덕영씨(전국제그룹부회장)가 4년만에 이 회사의 경영권을 되찾았으며 사유재산권을 자의적으로 박탈했던 당시 공권력의 부도덕성과 비윤리성이 지적되어 정치ㆍ경제적인 파문도 크다.
김회장측이 신한투자금융주식 반환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것은 소송상대가 비록 제일은행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정부가 국제그룹 해체당시 신한투자금융을 무리하게 국제그룹에 끼워넣었던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현재 국제관련 소송으로는 양정모씨가 한일합섬을 상대로 국제상사주식 반환소송을 내놓고 있고 김만제 전재무장관ㆍ이필선 전제일은행장등 7명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국제관련소송에 다소의 영향은 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국제그룹정리의 부당성을 결론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쨌든간에 한때 출국정지를 당하는등 어려움을 겪었던 김덕영씨는 명예를 회복,본격적인 재기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신한투자금융은 이철희ㆍ장영자 어음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사채양성화조치에 따라 다른 신설 단자회사들과 함께 82년 10월 설립된 회사.
설립당시의 자본금은 2백억원으로 김씨부자가 38%의 주식을 소유한 최대주주였고,타워호텔의 소유주 남충우ㆍ남영우씨형제,단사천씨등 재계의 현금실력자로 알려진 「개성상인」 출신들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고 있다.
신한투금은 후발 단자회사들 중에서도 영업실적이 좋아 「알짜기업」으로 손꼽혔으나 85년 2월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함께 정리돼 김회장측의 지분이 국제의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에 넘어갔었다.
김덕영씨가 양씨의 사위였고 국제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던 점과 국제그룹에 대한 신한의 총여신이 3백90억원에 이르러 부실화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 빌미였다.
김씨측에 따르면 85년 4월 국제그룹의 해체방침이 결정된뒤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이 김종호회장을 호출,김회장의 금융계퇴진과 신한투금주식의 전량매각을 요구했고 불응때 세무사찰을 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김씨측은 신한투금에는 양씨의 주식이 1주도 없으며 양정모 국제그룹회장과 사돈이라는 것외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버텼으나 이해 5월 은행감독원이 신한투금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세무사찰 등의 압력을 계속 가해오자 86년 3월 제일은행과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김씨측은 특히 사채양성화조치때 단자회사의 자금은 불문에 부친다는 조건이었는데 법으로 금지된 자금출처를 조사하는등 정부가 공권력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식매매당시 총 1천6백10만주를 주당 6백41원에 넘겼는데 공인회계법인의 평가로는 주당평균가치가 7백42원이었으며 경영권인수에 따른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다.
신한투금은 88년 증자,현재는 자본금이 3백억원으로 됐으며 이에 따라 김회장주식을 인수한 제일은행의 지분은 28%로 낮아졌다. 현재 신한투금의 주식이 주당 1만7천원선이므로 김씨측이 재인수할 주식가치는 총 2백20여억원(1백30만주)에 이르고 있다.
10여차례에 걸친 재판과정에서의 쟁점은 주식매매계약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느냐 하는 점인데 제일은행측은 「강압사실을 몰랐으며 현재는 신주로 바뀌어 원래의 주식은 없어졌다」고 맞서왔었다.
아무튼 김씨측에 대한 승소판결은 부실기업정리를 둘러싼 졸속행정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반성의 계기가 될 것이고 김씨측으로서는 신한투금의 경영권회복과 함께 재기의 발판을 구축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한편 국제그룹해체에 관여했던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 L씨는 김덕영씨의 가정교사를 한적이 있고 민관식 전신한투금고문은 김만제 전재무장관의 주례를 서기도 했는데 민씨가 재판과정에서 정부가 주식매매를 강요한 사실을 증언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길진현ㆍ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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