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속의 「와부와부」 징후/권영빈(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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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 마을 사람들의 풍습에는 행복과 웃음이 최대의 금기였다. 웃음이 없고 고집센 것이 미덕이면서 개인의 소유권을 철저히 존중했고 숭상했다.
사적소유의 심벌이 뜰이었기 때문에 곱게 가꾼 뜰은 재산의 상징이었고 남이 엿봐서는 안될 성역이었다. 그 성역에서 부부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성애를 즐겼지만 그렇다고 부부간의 사랑이 영육으로 맺어지는 결합은 아니었다. 욕망의 순간적 배설일뿐 성애만 끝나면 부부는 다시 깊은 불신과 의혹의 관계로 되돌아간다.
개인의 소유권은 철저하게 배타적이어서 설령 부부라고 한들 남편의 재산이 얼마인가를 따져묻는 아내라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 마을 사람들이 높이 찬양하고 떠받드는 최고의 가치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와부와부」라고 불렀다. 타인에게 손해를 보이고 자신은 이득을 보는 약삭빠른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이 기술은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한 자신의 이익이다.
자신의 소유욕을 위해선 타인의 목숨,타인의 희생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니 「와부와부」 자체가 곧 인생최대의 성공으로 꼽혀지는 사회규범이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상냥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할 경우가 생기면,그는 몇날 며칠을 타인을 친구로 삼아 그를 처치할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린다. 사랑과 평화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적의와 악의를 최대치로 늘리는 이런 사회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국화와 칼』이라는 명저로 유명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이미 1934년에 현지의 체험과 연구활동을 근거로 그런 마을,그런 사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실증했다.
서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 군도에 이웃하고 있는 화산지대의 도부 군도가 바로 그 곳이었다.
『대부분의 사회가 각자의 제도에 따라 적의와 악의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려 해왔지만,도부에서의 생활은 그 적의와 악의를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기르고 있었다. 도부족은 우주의 악의에 관해서 인간이 품고 있는 가장 무서운 악몽을 조금도 억제하지 않고 살고 있어서… 그들에겐 모든 생활이 격투로 보이며 그 투쟁속에선 의혹과 잔혹성이 최대의 무기가 된다. 그들은 자비를 바라지도 않지만 베푸는 적도 없다.』 베네딕트는 도부족의 생활을 이렇게 규정지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희생시키고 밟고 죽이고서야 일어서는 「와부와부」적 징후,그 격렬한 투쟁속에서 의혹과 배신이 장려되고 잔혹성과 파괴성이 날로 깊어지는 그러한 사회규범이 비단 도부족에게 국한된 미개사회의 한 문화 패턴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의 주변,우리의 세태를 되살펴 보자.
잘 살아보자는 깃발만 쳐다보며 달려온 20여년의 세월동안 적빈은 면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자신들도 모르게 치열한 경쟁과 격투속에 빠져들었다. 경쟁과 격투는 이기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었고 생존자체가 곧 승리였다. 때로는 남을 밟고 등뒤에서 찌르며 이기기도 했고 또 정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재산과 신분이 출세의 상징이 되었고 어떻게 살았느냐는 과정보다 얼마나 벌었느냐,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는 결과가 삶의 척도였고 인생의 미덕이 되어 버렸다. 가정은 그 미덕을 쌓기 위한 요새가 되었고,학교와 직장은 그 성공을 쟁취하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몇점을 땄느냐,몇푼을 벌었느냐가 삶의 목표가 되고 기준이 되었다.
사적소유의 확대를 위한 지칠줄 모르는 경쟁과 혈투속에서 남을 속이고 짓밟는 잔혹성이 강화되고 잘사는 타인,출세한 타인을 파괴하고 저주하고 싶은 강한 파괴성이 깊고 널리 퍼져나간다.
가진 자는 못가진 자의 나태함과 열등함을 비웃고 못가진 자는 가진자의 부도덕성과 비열함을 비난한다.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하려들지 않고 용납하려들지 않는다.
몇푼의 돈을 벌기위해 백주대로의 인신매매가 성행했는가 하면 흉포한 범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심과 골목길에서 칼날을 번득이며 일어나고 있다.
경쟁의 질주는 빈부의 격차,계층간의 불신을 더욱 깊게했고 과소비ㆍ땅투기ㆍ입시과열ㆍ마약의 확산으로 번져가면서 노사분규의 현장은 전장을 방불케했으며,대학가의 격렬시위는 증오와 적의로 가득차 올랐다.
이를 두고 산업화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일시적 사회병리현상이라고 덮어두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의 속성과 시장경제 이론의 원리란게 으레 그런거라고 호도해서는 안된다. 일정한 룰이 지켜지지 않고 적의와 악의로만 가득찬 경쟁이 경쟁일 수는 없다. 서구의 산업화는 완만한 과정속에서 엄격한 도덕성에 기반을 둔 시민의식의 성숙과 함께 발전하지 않았던가.
중화학공업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된 우리의 산업화는 길게 잡아야 20여년­. 그 짧은 세월속에서 농경사회의 미덕과 규범은 깡그리 사라졌고 사적소유의 확대만을 향한 적의의 경쟁만 키워온 것이다.
악의와 적의를 최소화시키면서 화합과 관용을 극대화 시켜야할 시점이 바로 지금부터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 보다는 안정과 복지를 강조하는 균형있는 경제정책,나아가 경제정의의 실현을 요구하게 되고 치열한 경쟁심리만을 부채질하는 고교입시 부활보다는 평준화교육을 바라게 된다. 기업이 가진자와 못가진자 간의 대결장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이 곧 노사양쪽의 공동이익이라는 공동체의식이 그런 이유로해서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의혹ㆍ불신ㆍ잔혹성ㆍ파괴성으로 대표되는 「와부와부」 징후군을 이땅에서 추방하고 신뢰와 화합과 관용의 덕목을 이 사회의 규범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확산되어야 하고 정부의 정책과 제도도 그런 방향에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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