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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옮기면 '강북'이 '강남'된다

중앙일보

입력

강북 개발과 서울 4대문 안 역사도시 복원을 위해, 나아가 서울 전체의 균형 개발을 위해 청와대 이전이 필요하다. 도시.건축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청와대 입지가 서울 성곽의 보전이나 북촌 살리기 등 서울을 온전한 역사도시로 되살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 서울 역사도시 보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와대로 인해 북악(백악)산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또 북촌 가운데 팔판동이나 경복궁 서쪽의 옥인동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북촌을 가꾸는 일이 북으로 계속 뻗어나가기도 어렵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청와대 이전은 서울 4대문 안 역사도시 보전에 필수적"이라고 전제하고 "이전 대상지로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부지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승 대표는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긴다면 이것은 서울 4대문 안 역사도시 복원의 의미뿐 아니라 궁궐이나 대통령 관저로 상징되는 권력이 평지의 공원에 배치됨으로써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의미까지 더해질 수 있는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송인호 서울시립대(건축학과) 교수는 "경복궁과 창덕궁 양궁 사이의 북촌 가꾸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그 효과를 팔판동과 옥인동까지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청와대 이전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다만 청와대가 이전한 뒤 청와대 부지를 포함해 주변지역이 개발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서울을 10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품격 있는 세계 도시의 모습으로 가꿔 나가기 위해서는 100년 정도의 긴 안목을 가진 '서울 역사문화보전계획'의 수립이 시급합니다. 청와대 이전을 그 계획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4대문 안 서울 도심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10 ̄20년이 아니라 100년 정도의 세월을 통해 도시를 가꿔 나가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효자동에 건축사무실을 두고 있는 황두진(황두진건축연구소) 소장은 "효자동 등 주변지역의 건축규제는 청와대보다는 주로 경복궁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청와대로 인한 심리적인 규제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앞길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통행할 수 있는 데도 이곳 사정에 밝은 동네 사람이 아니면 이 길은 통행금지인 줄 알고 아예 지나갈 엄두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그동안 이 같은 심리적인 규제가 경복궁 주변의 난개발을 막아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면서 "이제 문화재 주변의 난개발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시민의식이 성숙해지고 있는 만큼 청와대로 인한 개발억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같이 역사도시 보전에만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은평 뉴타운 총괄 건축가를 맡은 최명철(단우건축사무소) 대표는 "청와대는 북악산의 북사면이나 인왕산 서북면까지 서울 서북부 개발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평가했다. 그 예로 자하문 쪽이나 정릉 방향으로 연결되는 도로도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더뎠다. 한마디로 각종 인프라 확보가 청와대로 인해 차단됐었다는 결론이다. 청와대가 이전한다면 이 같은 각종 인프라 확충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성곽 복원하면 청계천 이상의 명소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산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자연지형을 가지고 있다.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 즉 북악(백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과 외사산(外四山), 즉 관악산, 북한산, 용마산, 덕양산은 각각 옛 도성의 경계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경계에 해당된다.

서울 성곽은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으로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축조됐다. 길이는 약 18㎞로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에 숙정문과 동북에 혜화문, 동남에 광희문, 서북에 창의문, 서남에 소덕문 등의 4대문과 4소문을 냈다. 서울 성곽은 애초 토성으로 축조됐으나 세종 4년에 전 구간을 돌로 다시 쌓았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숙종 때 대대적인 개축이 이뤄졌다.

서울 성곽은 1907년 일제 강점기 때 '성벽처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철거되기 시작해 4대문과 4소문 주변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일부만 남긴 채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서울 성곽 복원사업이 시작돼 그동안 10.6㎞의 구간이 복원됐다. 복원이 곤란한 시가지 구간 5.1㎞를 제외한 나머지 구간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으로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성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되는 북악산 구간은 청와대로 인해 시민들이 가기가 어렵다. 최근 숙정문 등 일부가 시민에게 개방되긴 했으나 여전히 대부분은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황두진 대표는 "북악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야말로 왕이 서울을 보던 시선"이라면서 " 시민들이 남산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의 서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성곽의 북악산 부분이 개방되면 일부 훼손된 도심 구간을 이어 서울 시민이 18㎞에 달하는 서울 성곽 걷기가 가능해질 것이며, 이는 복원된 청계천의 5㎞ 남짓한 구간과 함께 서울의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북악산과 남산, 용산공원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 남북의 녹지축 구상도 실현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청와대 터는 백악관의 3배

현재 청와대 경내 대지는 세종로 1번지, 삼청동 157-94번지 외 9필지, 영빈관, 세종로 1-91번지 외 17필지, 궁정동 1-2번지 외 43필지 등 총 면적이 3개 동 73필지 238,881㎡(72,338평)에 달한다. 건축 연면적은 총 6000여 평이다.

1792년 설계 및 착공해 8년 만에 완공된 백악관은 지상 2층, 지하 3층으로 132개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전쟁과 보안에 대비하여 지하층이 더 넓은 것이 특징이다. 지하에는 지하도가 있고 이는 국방성(펜타곤)과 연결된다. 백악관 부지는 7만2000㎡(약 2만1800평), 건축면적은 약 1800평으로 청와대의 3분의 1 정도의 규모다. 또 평지의 공원 가운데 위치해 어느 방향에서든 대중의 접근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청와대 이전의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당장 가시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가 떠나더라도 그 터를 개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따르는 편익을 수치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도시들이 모두 문화도시를 추구하고 있는 만큼 역사도시로의 복원은 그 가치를 환산하기 어렵다. 도시경쟁력을 그만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빌바오가 유명한 미술관 하나를 건설함으로써 탄광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발돋움한 것, 그리고 프랑스 리옹이 구도심을 역사도시로 철저하게 보전함으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엄청난 관광객을 그러모으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또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강북 개발에도 청와대 이전은 핵심적인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북악산이 청와대 경호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정릉, 성북동, 구기동 등으로 이어지는 교통망의 확충도 가능하며 북악산, 인왕산 주변의 공원화 등이 본격적으로 계획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공비 침투 후 철저히 개발 통제

이뿐만 아니라 정체상태에 도달한 북촌 가꾸기가 옥인동, 효자동 등 서쪽으로 이어지면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효자동, 부암동 및 세검정 등이 매력적인 주거지로 새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부암동, 세검정 등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씨 등 북한 무장공비가 북악산 등 산악을 통해 침투한 이후 철저히 개발이 통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주택개발도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계획 개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서 가깝고 자연지형이 빼어나지만 청와대 경호를 위해 활용이 제한됐던 이들 지역에 대한 규제가 좀 더 풀리면 강북이 강남을 뺨치는 정도의'서울 균형개발'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청와대가 나가면 그 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주거지 등으로 잘못 개발되느니 차라리 청와대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이 청와대 이전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지적이다. 청와대가 그곳에 있어 그나마 북촌 주변이 현재 모습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다.

강홍빈 서울시립대(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경복궁 주변과 북촌 등이 온전하게 유지되려면 청와대 부지 및 그 주변이 개발돼서는 절대 안될 것"이라면서 "청와대를 옮겼을 때 이후 개발압력에 대처할 관리능력이 있을지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전봉희 서울대(건축학과) 교수는 "고려 이후 궁터로 유지된 청와대 부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하고 "경복궁 복원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뿐 아니라 어떤 형태가 됐든 국민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제 강점기에 변형 훼손된 경복궁 등 조선왕조의 궁궐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경복궁 복원 사업엔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총 18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침전 권역과 동궁 권역, 흥례문 권역의 복원은 완성됐고, 태원전 등의 복원사업이 지난해 완공됐다. 그러나 청와대가 들어선 곳의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에 대해서는 복원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다.

신혜경 중앙일보 도시건축전문기자 (hk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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