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실각할까 미도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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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사태 매우 유동적”… 6월 미소 군축회담 차질 우려/베이커 방소,외상회담보다 사태 추이 탐색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향하기 위해 5일 저녁 워싱턴을 떠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발길이 매우 무겁다. 그가 모스크바에서 만나게 되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정치적 장래와 소련자체의 향배가 지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당초 작년말 열린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2월 미소 외무장관 회담 개최를 결정했을 때만해도 이번 회담의 의제는 분명했었다. 오는 6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미국에서 만나 전략핵무기 감축협상을 마무리 짓고 조약에 협정할수 있도록 외무장관간에 사전 협의를 벌인다는 것이 2월 정상회담의 목적이었다.
물론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면 군축 이외에도 소련의 인권문제와 소련개혁을 촉진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협력 방안,미소의 유럽주둔 병력문제도 예상되던 의제였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두 나라의 관심대상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양측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장래와 그가 추진해온 개혁정책의 운명이다.
미국 행정부와 부시대통령은 여러차례에 걸쳐 고르바초프가 정치적으로 동요를 극복해 그의 개혁정책이 계속적으로 추진되는것이 미국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천명해왔다.
지난 주말 모스크바의 대규모 시위로 적나라하게 부각됐듯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래 헌법으로 보장됐던 소련 공산당의 1당체제가 근본적으로 동요되는 사태에 이르자 미국은 고르바초프가 강경파에 의해 축출되거나 정치적 세력이 약화될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5일 미 국무부의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최근 모스크바 사태에 대해 『러시아 혁명후 소련 국민이 정치참여 권리를 나타내는 최대의 시위』라고 말하고 이는 소련개방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논평했지만 소련 공산당 중앙위 회의 결과가 나올때까지는 직접적인 의사표시를 자제하는 눈치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소련관계 정보 소식통들은 고르바초프의 장래에 대해 당장은 그렇게 비관적인게 아니다. 최소한 수개월간 고르바초프 집권에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인 것으로 미 매스컴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소식통들은 금년 한햇동안은 그의 집권유지 가능성이 60대 40정도로 우세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들은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위치를 좀더 국가적 차원으로 격상,강화시키지 않는한 권력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큰것으로 보고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 회의가 끝난뒤 7일부터 사흘간 모스크바를 방문해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고르바초프도 만나는 베이커 장관의 이번 최대 과제는 따라서 군축문제 협의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고르바초프의 장래 향배파악이 될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중도노선이 보수파에 의해 배척당할 것인지,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 등이 자신들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에 관해 베이커 장관은 심각한 탐색을 벌이게 될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한가지 미소 강대국이 이번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부딪칠 문제는 독일통일 문제다.
통독문제에 관해 미국은 지난 연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 회담에서 명백히 밝혔듯이 통일되는 독일은 NATO내에 남아야 한다는게 기본적 입장이다. 소련은 얘기하는 사람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통독에 부정적이고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이 문제에 관한 국제적 표결까지 거론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5일 개막된 중앙위에서 사실상 소련에 복수정당체제의 길을 여는 한편 시위군중의 개혁촉진 욕구를 당 보수파들에 대한 압력으로 전환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베이커 국무장관의 모스크바 방문과 미국의 대소 자세는 고르바초프가 중차대한 공산당 중앙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린 매우 유동적인 상태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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