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강릉 안반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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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1Ds MarkⅡ 16-35mm f16 1/2초 ISO 100

새벽 어스름 속에서도 바람은 쉼 없이 안반덕 고갯마루로 안개를 실어 나릅니다. 그 소슬한 바람에서 진한 풋내가 묻어납니다. 밀려드는 안개로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렵지만 풋내만으로도 배추 수확이 한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잘려 나간 배추에서 풍겨오는 내음이 여간 향기롭지 않습니다. 그물망에 촘촘히 배추를 눌러 담는 소리가 뽀드득 뽀드득 경쾌하게 울립니다. 마치 살짝 언 눈을 밟고 오는 반가운 이의 발걸음만 같습니다. 싸한 풋내와 꼬들꼬들한 소리만으로도 안반덕의 새벽은 싱그럽습니다.

시나브로 안개가 걷히자 노란 속살을 봉긋이 내민 배추가 줄을 지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차례로 꽃불이 번지듯 끝도 없이 산을 타고 넘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산비탈 자갈밭에서 자란 배추지만 여느 꽃보다 곱디곱습니다.

안반덕은 평창과 강릉을 잇는 피덕령 산마루의 너른 고랭지입니다. 그 끝을 보려 산을 넘었습니다. 게서 또 한 고개를 넘었습니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도 온통 배추입니다. 수해 때문에 전국 곳곳의 배추농사가 흉작이라 요즘 배추값이 금값이라 합니다. 안반덕을 가득 메운 배추가 다름 아닌 금배추인 셈입니다.

사진에서 피사체를 파인더 안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프레이밍(framing)이라 합니다. 프레이밍을 단순하게 처리하면 주제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선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전봇대나 인공 구조물을 피해 프레이밍을 해보세요. 중언부언 많은 말보다 단순명료한 한마디가 쉽게 이해되듯 사진에서도 뺄 것을 뺀 요약이 중요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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