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관성 없는 종합토지세 논의/홍원탁(시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 국민들은 격렬한 형태로 확산되어 가는 노사분규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한 심한 불안감과 정부 및 정치지도자들의 방향감각마저 없어 보이는 정신상태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9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체제변혁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분배질서의 제도적 개혁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정부나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여야정당들이 과연 그러한 개혁조치를 수행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까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과 불신감은 그간의 입법사례에서 여러차례 증폭되었고,특히 종합토지세 입법에서 그 신뢰감이 결정적으로 손상된 것 같다.
○토지 보유비용 낮아
작년 5월 정부가 제안하고 여야가 한마음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종합토지세에 의하면,아주 내놓고 투기목적으로 시가 10억원 정도의 임야전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매년 부담해야 하는 재산세가 시가대비 0.18%를 초과할 수 없게 되어있고 설혹 과표가 언젠가 시가의 60% 수준으로 현실화된다고 해도 보유과세가 시가의 0.53%밖에 안되게끔 되어있다.
하지만 실례로 미국의 경우를 들어보면 중하위 봉급생활자가 1가구1주택을 가지고 살 때에도 매년 시가대비 1∼2%에 달하는 재산세를 내게 되어있다. 현재 입법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종합토지세 체제하에서는 투기적인 토지소유자들의 보유비용이 너무 낮기 때문에 양도소득세율 같은 것을 아무리 올려보아야 토지공급 「동결효과」와 세금의 「가격이전효과」만 발생하게끔 되어있다.
전국 민유지의 77%를 상위 6.2% 계층이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업무용 토지와 농민의 자경농지 등에 추가해 1가구1주택에 상응하는 60∼1백평의 택지를 기초공제 형식으로 저율분리과세 해주었다면 국민의 90% 이상이 종합토지과세 대상에서 제외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택지 한평 가진 사람도 모두 과세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는 되도록 많은 국민들에게 종합토지세에 대한 피해의식을 확산시켜 근본적인 토지투기 해소의 제도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상쇄시키려는 음모(?)가 아닌가 오해를 받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마치 상상해 볼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종합토지세제를 만들어 보려는 듯이 업무용 건축물 부속토지를 가지고 온갖 「장난」을 다했다.
토지의 고밀도 이용을 유도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건출물 부속토지는 으레 용적율을 기준으로 정의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건폐율을 기준으로 부속토지를 인정해줌으로써 비싼 땅위에 단층건물을 깔아놓고 땅값이 더 오르기만 기다리는 행위를 조장시켰었다.
○자주 바꿔 혼란 초래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지난해 통과된 종합토지세에서는 지상 건축물 과세가 바닥대지 과표의 10%만 초과하면 모두 업무용으로 인정해주는 맹랑한 내용을 도입했다. 그러고나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서비스는 생산활동이 아니라는 엉뚱한 개념을 도입했다.
현대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서비스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공산국가들이 서비스를 이념적으로 비생산적 활동인 것처럼 경시하다가 경제를 망친 경험을 모방하고 싶어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인 것이다.
국민들을 이렇게 혼동시킨 다음에 정부는 건축물 부속토지로 쉽게 위장될 수 있는 투기용 대지까지도 과표기준 50억원 이상이면 5% 세율을 적용할 것을 2%로 슬쩍 낮추어 주었다. 야당은 과표기준 3백억원 이상 토지에는 5% 세율을 적용하는 형식으로 정부가 제안한 종잡을 수 없는 세율체계를 그럴듯한 모양으로 위장시켜 주었다.
이제와서 정부는 업무용건축물 부속토지에 대한 세율을 당초 정부안 수준으로 다시 낮추고 1가구1주택 부속토지를 분리과세가 아니라 세율을 내리는 방향으로 개정법안을 만들어 2월국회에 상정하겠다고 한다.
일관성도 없는 종합토지세가 그나마 실효를 거두려면 가등기ㆍ중간생략등기ㆍ명의신탁 등에 의한 토지가명 거래를 한시바삐 불법화시켜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론 여야정당내 그 누구하나 토지거래 실명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없다.
현재 공장용 토지는 생산활동 규모와 전혀 관계없이 지상건축물의 크기에만 비례해 정의되고 있는데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겠다는 말도 없이 정부는 덮어놓고 업무용 토지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노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토지투기 문제를 접근하는 정부태도는 사명감이 전혀없이 그저 악화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흉내만 내는 인상을 준다. 정당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토지문제에 대해 아직껏 공식적인 당론을 정한 바 없다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인양 내세우고,고작 한다는 말이 별 내용도 없는 정부 원안대로 모두 입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94년까지 과표를 일원화된 공시지가의 60%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의 예를 보아도 공시지가는 실제 토지가격의 80%를 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안대로 된다고 해도 과표현실화 비율은 시가의 48%를 초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양도소득세가 방위세와 주민세를 포함해 명목상 70%까지 달하는 누진세율로 되어 있지만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과표현실화 계획에 의하면 양도소득세가 실제 거래차익의 34%를 초과할 수 없게 되어있다.
○개혁의지가 성패 좌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재산세가 시가의 0.1%에도 미달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과표현실화 추진결과로 많은 지역의 재산세가 전년대비 60% 이상 오르게 됐다는 사실만 대서특필하는 매스컴도 반성을 해야하고,땅투기 불로소득을 없애면 사업을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는 기업가도 반성해야 할 것 같다.
토지투기 문제는 실제 양도차익의 50%가 넘는 양도소득세,시가의 1%에서 5%에 이르는 종합토지세,개발이익환수제,경자유전원칙에 의한 농지소유의 직접규제,토지거래 실명제 등을 잘 조화시키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개혁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에 달려있는 것이다.<서울대교수ㆍ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