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생물학도 밤엔 첼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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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첼로와 생물학을 함께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둘 다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29일 고향인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연 첼리스트 고봉인(21)씨. 하버드대 학생인 그는 국내.외 음악계가 인정하는 '세계 첼로계의 샛별'이다.

7세 때 첼로를 시작한 그는 전북 전주시 신흥중 1학년생이던 1997년 제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청소년 콩쿠르 첼로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독일 첼로 매스터 클라스에서 란드그라프 폰 헷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틀 요요마'로 비유되기도 하는 그에게 해마다 러시안 심포니, 프랑크푸르트 채임버, 도쿄 필하모닉 등 세계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요청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그는 "첼로 전문 연주자와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 어느 한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럼 없이 밝힐 만큼 학문에 대한 욕심이 많다.

고씨는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과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학자인 아버지 고규영(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의 실험실을 드나들면서 생물학에 빠져들었고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14세 나이에 첼로의 거장 다비드 게링거스 교수의 최연소 제자로 독일 베를린 음대에 입학할 때도 고집을 피워 일반 학교(독일 존 에프 케네디 고등학교)를 동시에 다녔다.

2004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다음달이면 3학년이 된다. 첼로는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하버드대 수학과 출신인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때문에 학기중에 차로 40분 걸리는 학교와 음악원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밖에 자질 못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미리 일정을 짜서 생활하는 훈련을 시켜주신 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일정을 체크하고 시간 단위로 정밀하게 연주와 학과공부 스케줄을 짜놓고 이에 맞춰서 하루를 시간을 쪼개 씁니다."

오전에는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실험과 리포트 작성에 매달린다. 첼로 연습은 자정 무렵부터 4시간가량 한단다.

그는 "전문 연주자들에 비해 연습량이 턱없이 적지만,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몰입하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버텨 낸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공연 때에는 저녁 밥도 거른채 밤새워 숙제를 해 팩스로 학교에 제출한 적도 있단다.

그에게 이번 전주 공연은 의미가 특별하다고 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의 첫 독주회라 어떤 작품을 선택할까 고민했어요. 여행이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베토벤의 소나타 5번'과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Op. 19 G단조'를 골랐어요. 연주를 잘했다는 말보다 '어디를 다녀온 기분이다'는 평을 받고 싶어요."

31일에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다음달 2일에는 광주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독주회를 연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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