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전 미국무가 본 유럽기류/소 유화정책 경계…나토가 새구심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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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의 급격한 동구변화를 보고 동구가 서구자본주의체제를 모방하려 한다고 예상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동구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우며 소련조차도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뒤따라가는 입장이어서 소련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도 어렵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미 동구변화에서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현단계에서 미국은 20년대 고립주의정책하에서 범한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동구민주화 움직임을 피상적인 공산주의 개혁으로 몰이해함으로써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내세운 소련의 동구지배를 더욱 공고히해주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새로운 유럽사회 건설과 관련,다음과 같은 잘못된 신화는 버려야할 것이다.
첫째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장기적으로 건설적·안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점이다.
어느 누구도 동구 민주화가 소련의 무력으로 좌절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또한 소련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가면을 쓴 유화정책으로 교묘히 동구지배를 영속화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둘째는 냉전시대의 종언이 유럽분쟁 자체를 소멸시켰다는 착각이다.
최근 미국·유럽이 통일독일에 대해 두려움을 표시하고 있다.
2차대전 후 서구는 서독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과거역사를 통해 경험한 것과 같이 독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정부·경제협력·범대서양 집단안보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서구민주주의체제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서독이 통독 후 한꺼번에 이들 모두를 파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통일독일을 우려,소련을 견제국으로 남겨 둔다거나 미소가 연합해 독일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세번째는 소련의 위협이 줄어듦에 따라 나토도 축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는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자유유럽 건설을 위해 새로운 정치적 임무를 담당해야 한다.
또한 나토는 지금까지 유럽의 안전을 지켜왔듯이 계속 전쟁억제력을 유지,새로운 자유유럽에서도 서구민주체제 유지와 미국이 맡아온 유럽안보를 대신 담당하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동서화해가 지속됨에 따라 나토도 지속될 것이다.
새로운 유럽은 민족주의와 집단안보체제,그리고 공동가치관에 기초한 자결원칙하에 건설될 것이다. 앞으로 동구까지 포함될 이 유럽 건설에는 독불협력,민족주의,자유시장경제,계속적인 나토의 역할이 필수적이다.<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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