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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외래어표기 통일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외래어의 표기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끌어오고 있는 난제로 비록 신문에서 뿐만이 아니고 언어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국어사전마저 낱말의 표기가 달라 어리둥절하게 된다.
예를 들면 팸플릿, 피라미드라고 표기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팜플렛, 피라밋이라고 표기한 사전도 있다. 개정 외래어 표기법에 준거하여 만들었다는 89년1월에 발행된 새 사전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개정 외래어표기법 제1장 제5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항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라고 돼 있다.
이미 굳어진 외래어의 관용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표기하게 할 소지를 안고 있는 조항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 조항대로라면 앞으로 외래어의 통일은 요원하다고 본다. 차라리 「외래어의 표기는 원어 표준 발음대로만 적는다」는 강제조항을 두었어야 옳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외래어 표기가 통일되는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행 국어사전에는 「텔레비전」이라고 실려 있다. 신문에서는 「텔리비전」이란 말을 흔히 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전자는 관용을 존중한 것이고 후자는 발음위주의 표현이다. 영어시간에 많이 들어온 터여서 우리는 텔리비전이란 말에 더 익숙해 있는 것이다.
배지(badge)라는 말도 발음을 중시하여 「뱃지」로 적음이 옳다고 본다. 그 단어의 실제 발음은 빼찌에 가깝다. 그리고 된소리는 쓰지 않기로 돼 있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씀으로써 「배찌」로 발음된다는 뜻이 되겠고 또 한자음과도 구분되어 외래어 표기의 특징을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사전마다 표기가 다른 것은 외래어뿐만이 아니다. 우리말 낱말도 사전마다 다르게 실리고 있음을 가끔 보게 된다. 한 사전에는 「윗물」이라 돼 있고 다른 사전에는 「웃물」이라고 돼 있다. 개정 한글맞춤법에는 「웃」·「윗」의 구별과 사이시옷 처리규정이 나와 있는데도 낱말 통일이 안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수도물이라 쓰고 있고 사전에는 수돗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일절(일절)」을 부정문에 쓰이는 말로 다룬 사전이 있고 그것을 표준어로 인정치 않고 긍정·부정문 모두에 「일체」를 쓰는 것으로 돼 있는 사전도 있다. 품사 및 띄어쓰기에 있어서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내(내)」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명사·불완전명사·접미어로 세 종류의 사전이 각각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바른대로, 아쉰대로라는 말을 각각 독립된 부사로 다룬 사전이 있는 반면 바른 대로, 아쉰 대로라고 띄어써 관용구로 취급한 사전도 있다.
지난해 12월1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글을 보면 막대한 비용과 판매전망 불투명 때문에 새 국어대사전의 출판작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왕 늦어진 바에 출판사마다 뜻을 모아 통일된 사전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어의 표준화는 각출판사가 펴내는 사전에 달려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시일이 늦어지더라도 완벽한 사전의 제작에 착수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 강수현 <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783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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