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쪽의 反北단체를 해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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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은 평양에서 열린 제12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뜬금없이 남쪽의 반북단체 해체 및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요구했다. 북측의 대남 내정간섭적 요구가 이처럼 도를 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원으로서의 활동에 사과조차 꺼리는 독일 국적의 학자 송두율씨를 관용하자고 대통령까지 나서는 판이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북측 단장 김영성은 기조발언을 통해 "남측 일부에서 우리 공화국을 악랄하게 중상하고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까지 모독하는 망동을 벌이는 것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과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할 데 대한 북남합의서의 기본요구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도발행위"라며 반북단체의 해체를 요구했다. 북한은 또 남측이 宋씨에 대한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그를) 우리와 연결시키는 것은 반공화국 대결의식을 가진 자들의 억지몽상"(평양방송)이라고 왜곡.비난했다. 그렇다면 宋씨가 왜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친북행위에 법의 심판을 받겠다고 자청하는가.

북측의 주장은 그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진다. 우선 상대방 체제를 인정.존중하기로 한 남북합의서의 정신은 상대방 헌법체제의 존중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반북단체 해체 요구는 남쪽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도발행위'를 한 것이 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북에 주체사상을 선전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측은 만일 남쪽이 그렇게 요구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은 북핵사태는 미국과의 일이라면서 회담에서 일절 외면했다. 1992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은 어디 갔는가. 북한은 궁색한 논리와 어거지 주장을 거두고 북핵 해결에 나서야 한다. 북한을 억지와 생떼에서 헤어나오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의 굳건한 정체성 확립이 절실해진다. 감상적인 민족의식의 발로는 진정한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암적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