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 살리자…386들 후원회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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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일 서울대 앞 서점인 '그날이 오면'(gnal.co.kr)에선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 10명의 참석자는 1980~90년대 서울대를 다닐 무렵 이 서점의 단골들로 모임의 이름은 '그날이 오면 서점 후원회'. 말 그대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서점을 돕자는 목적에서 결성됐다. '그날이 오면'은 전국에 단 하나 남은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이다. 80년대 후반엔 전국 대학가에 150개 이상의 사회과학 서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날이 오면'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날이 오면'도 98년 이후 누적 적자가 1억원에 달해 어려움이 커졌다. 매출은 10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나 월 임대료 200여만원도 부담스러운 처지가 됐다.

서점의 김동운 대표는 올 초 오랜만에 서점을 찾아온 장경욱(38.법대 87) 변호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장 변호사는 대학 시절 추억이 담긴 서점이 문을 닫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주변에 알음알음으로 연락해 후원회원들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후원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장 변호사는 "학창 시절 지성의 중요한 영양분을 얻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요즘 대학가에선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 말고도 이범(39.분자생물 84), 여성오(34.국사학과 92.96년 총학생회장)씨 등 80~90년대 학번 동문 40여 명이 후원회에 가입했다. 후원회는 다음달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모금운동에 들어간다. 후원회원들은 1인당 월 5000원에서 10만원까지 정기 후원금을 낼 예정이다.

◆사라진 사회과학 서점=80년대 사회과학 서점은 운동권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약속 장소로 즐겨 찾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서울대 '전야', 고려대 '황토', 연세대 '오늘의 책' 등 유명 사회과학 서점은 90년대 중반 이후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대학가에서 이념이 퇴조하고 개인주의 풍조가 거세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선후배의 끈이 느슨해져 후배에게 책을 권해주는 전통도 사라졌다.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 공세에도 타격을 받았다. 일부 사회과학 서점은 일반 서점으로 전환하거나 전공을 바꾸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건국대 앞 '인' 서점은 82년 개점한 전국 최초의 사회과학 서점이지만 지금은 영화.만화 등 문화 전문서점으로 바뀌었다.

권근영 기자, 유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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