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커버 스토리] 4인4색 디자인 인간型 - 정통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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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 감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품에도 감성이 있다.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성에 어울리는 물건을 탐낸다. 그래서 백화점 쇼핑백만 열어봐도 물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개인이 소유한 물건을 한곳에 모아 보면 그 사람의 감성과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week&은 저마다 독특한 취향과 배경을 가진 4명을 선정, 그들의 소유물을 가지고 '감성 지도'를 그려봤다. 각자 머리 속에 자신의 소장품 목록을 펼쳐놓고 '나의 감성 좌표는 어디인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디자인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보공학연구소가 기획에 함께 참여했다.

▶정통파(Authentic Stage)=전통을 계승해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감과 애착이 강하며,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질서를 숭상한다.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기업인들의 모임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직을 올 초부터 맡고 있는 윌리엄 C 오벌린(60) 보잉 코리아 지사장.

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별로 싫지 않은 표정이다. 실제로 오벌린 회장은 텍사스 석유 부호 출신이자 대표적인 보수파로 꼽히는 부시 대통령과 여러 모로 닮았다. 미국 독립전쟁이 한창일 때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대인 알자스 지방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오벌린가(家)는 자신들의 성(姓)을 대학이름(오하이오주 오벌린 대학)으로 내줄 만큼 뼈대있는 가문. 그런 배경 때문일까. 그의 취미 역시 미국에서도 고상한 스포츠로 꼽히는 요트 타기다.

"요트 타는 걸 좋아하신 어머님 덕에 어렸을 때부터 파도와 바람을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한국에선 여건이 안돼 잠시 접어둔 상황"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완고한 편견에 잡혀 있을 거라는 생각엔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엔 다소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만 중년이 되면 보수적인 색깔을 띠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면 오히려 '원숙한 개방적 사고'로 돌아갑니다."

그는 오히려 정통파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가장 큰 잣대는 바로 가족과 소속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정의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 내가 얻은 것들을 되돌려줄 줄 아는 배려, 이런 것들이 바로 정통파의 특징 아닐까요."

그 역시 개인적으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물론 교육.의료시설 등 공공기관에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낸다고 했다. 여유 시간은 되도록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보수적 스타일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현재 그가 사는 서울 평창동 자택도 그런 이유로 선택했다.

"겉모양은 2층 양옥이지만 거실에 대들보 등 한국의 전통미를 살린 인테리어와 조용한 주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했다.

쇼핑 습관 역시 마찬가지. 머리는 벌써 7년 이상 서울 웨스턴 조선호텔이나 서울 용산 미8군 내 이발소만을 고집한다. 와이셔츠 역시 고급쇼핑 몰로 꼽히는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 매장에 걸린 것만을 사 입는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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