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커버 스토리] 4인4색 디자인 인간型 - 선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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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파(Refined Stage)=정신없이 빠른 도시생활의 속도를 즐기는 타입.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감각을 지닌 신(新)보수파다. 유럽의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고, 조금 먹는 대신 꼭 맛있는 것을 찾는다. 일.생활.놀이 공간이 함께 있는 도심의 주상복합건물을 좋아한다.

대구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현재 국내 최고의 국제중재 사건 전문 변호사….

왠지 두툼한 안경을 끼고 법전(法典)에 코를 박고 있는 딱딱한 사람일 것 같다. 문화.예술같은 단어와는 별 인연이 없을 듯하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41) 변호사를 만나면 이같은 선입견은 보기 좋게 깨진다. 우선 외모부터가 그렇다. 헤어 스타일링 제품을 가볍게 발라 빗어내린 머리하며, 잘 손질된 피부까지 연예인 뺨친다.

취미를 들어보면 입이 벌어진다. 오페라광이어서 맘에 드는 공연은 빼놓지 않는단다. 그림 보는 눈은 수준급이고, 사진 찍기도 좋아해 손수 만든 풍경 사진첩이 제법 된다고 한다. 한해의 3분의 1 이상을 외국 출장으로 보내고, 국내에서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 무렵까지 사건 기록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이 언제 이런 소양을 갖췄을까.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 목표예요. 돈만 많이 번다고 행복한 건 절대 아니잖아요?"

행복해지려면 생활을 즐기기 위한 교양부터 갖춰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문화 생활에 짬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래서다.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바쁜 일상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돼주기도 한다.

그는 요즘 들어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부쩍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가 고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언제나 '현명한 사람은 처신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한다'고 강조하던 꼿꼿한 사람이었다. 김변호사는 "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만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 못지 않게 전통과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사람이더라"며 웃었다.

그는 "전통적 규범과 현대적 감성이 잘 조화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물건들도 '전통'과 '첨단'이 한데 섞여 있다. 손수 구입한 무선 키보드가 달린 최신형 컴퓨터 옆에 15년째 책상을 장식해온 자동차 모형이 놓여 있는 식이다. 양복은 버튼 2개짜리 정통 이탈리아 정장을 즐겨 입으면서, 집은 초현대식 주상복합건물 39층을 선택하기도 했다.

김변호사는 최근 행복의 또 다른 필요조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 일은 밥벌이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받은 돈 이상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줘야 내가 행복해지더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가 더 들면 돈벌이와 관련없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짜 '멋진' 삶이다.

김선하 기자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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