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문인들의 진한 연애편지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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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작가들의 연애편지

김다은 엮음, 생각의 나무
244쪽, 9800원

"목이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뺨과 귓불이 달아올라 편지를 다 쓰고도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 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부터 2005년 등단한 시인 홍성식까지 27인의 내밀한 고백을 담았다. 문학사적 의의는 차치하더라도 감수성 뛰어난 글쟁이들은 어떻게 고백하고, 아픔을 겪고, 사랑을 일궜는지 그 궤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H씨 나와주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돌풍이었을까요. 언젠가는 H씨의 마음 씀씀이에 깊이 감사드릴 날이 올 겁니다." 소설가 하성란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이렇듯 의연히 견뎌냈다. 그런가 하면 극작가 장성희와 시인 반칠환은 "함께 저녁 먹으면서 한 말처럼 흐린 날도 더러 있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지? 무엇보다 결혼 십 주년에 제일 선물은 내가 짜부라들지 않고 그나마 기를 펴게 된 것이 다행이지? 더 열심히 정진할게"라고 결혼의 기쁨을 되새겼다.

요즘에야 이런 연애편지를 쓰는 이는 드물 것이다. 기껏해야 이메일로, 그것도 아니면 쿨하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감정을 전하고 정리하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 연애편지가 절절한 애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그릇에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승화된 문학의 한 형태임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날의 한 때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덤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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