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순 무궁화유지 회장 "만원짜리 '평화시장표' 옷 사입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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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커피향이 실내를 그윽하게 적시는 가운데 최남순 회장은 가끔 웃기도 하면서, 때론 눈시울을 적셔가면서 가슴 속에 담겨 있는 과거로 조용히 산책하기 시작했다. 지칠 줄 모르고 회사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던 최 회장이 의외의 비화들을 공개했다.

“나로서는 아주 특별한 일인데…. 나는 청소년을 많이 키우거든요? 내가 여자라도 남자 같은가 봐요. 하나님이 청소년을 잘 거느릴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얘기냐 하면, 한 40년도 훨씬 더 된 것 같은데 우리가 을지로 6가에서 살았어요. 거기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그런지 구두 닦고 소매치기하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어요. 그때 내가 그들을 무조건 데려다가 취직시켜주고 장가 들이고 그런 일을 많이 했어요.”

거리의 아이들은 유독 최 회장을 무서워 했다고 한다. 을지로에서 사고치는 아이들을 전부 집으로 데려와서 얘기 들어주고, 얘기 듣다가 속이 상했구나 싶으면 그들 편이 돼서 같이 흥분도 하고, 그러다가 잘못한 건 타이르고 도와주고. 그렇게 하니까 결국은 전부 최 회장 앞에서 반성부터 하고 무서워하더란다. 최 회장은 이때만큼은 기업인이 아니었다. 두서없이 묻어두었던 얘기를 꺼내고 있었지만 분명 우리가 흔하게 말하고 있는 돈 가진 사람의 역할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을지로에서 사는 동안 그네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 을지로에서 소매치기당했다는 소리가 없어졌고 싸움질이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몇 년 지나서 우리가 장충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거긴 깡패라고 할 정도로 아주 거친 애들이 17~18명 됐어요. 아예 그룹이 있었어요. 을지로 생각이 당장 나요. 그래서 그네들도 전부 불러 모았어요.

그러면서 을지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걔네들도 장사를 할 수 있으면 시켜주고 취직을 원하면 자리를 찾아주었는데 한 번은 장충동 공원 지역에 또 다른 패들이 있었던지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이게 뭔가 싶어서 전부 모았어요. 근데 누가 소집을 시키느냐 하니까 을지로에 있던 애가 끌고 와요, 하하하. 전부 20명이 모였어요. 나중에 걔네들 가운데 4명은 장가를 보냈으니까 내가 어머니예요, 하하.”

‘거리의 아이들’ 장가까지 보내줘

회장님이 살림을 차려주셨다는 겁니까?
“상대방 부모를 만나고 양가 부모가 앉는 자리에 내가 앉았어요. 살림이라는 것도 뭐 그리 중요해요? 입을 옷하고 둘이 누울 수 있는 방만 있으면 되지. 시작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취직시킬 때 보증은 내가 서고. 하여간 대판 싸운 놈들을 소집시켜서 나까지 21명이 됐는데, 그네들을 전부 새 옷으로 사 입히고 도큐호텔 뷔페식당으로 데리고 갔죠. 거기서 정말 가슴을 열어놓고 타일렀어요. ‘너희도 노력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어. 행여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나나 너희 부모나 정말 너희가 잘되기를 바라는 건 같은 마음인데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고 타일렀지요. 그러고선 식사하자 했더니 음식을 앞에 놓고 먹지를 못해요. 우는 애도 있고 얼굴이 벌겋게 돼서 내 손만 꼭 잡고 있는 애도 있고. 그렇게 했는데 단 한 사람도 탈선이 없어졌어요. 그걸 보고 얼마나 고맙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이제는 다들 성장했고 사회인으로 살아갈 것 아닙니까? 길에서 만나거나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까?
“왜 없어요. 지금 그 사람들 보면 정말 반갑죠. 한 번은 친구하고 을지로 6가에 호텔 있죠? 거길 지나가는데 인물들도 훤하고 어깨가 쩍 벌어진 사람들 서너 명이 저만큼 가다가 갑자기 달려와서 90도로 절을 하잖아요. 얼마나 반가운지. 근데 친구는 놀래가지고 누구야, 어떻게 된 거야, 이러면서 눈이 커져요. 그러면 ‘내가 여두목이야’ 그러면서 막 웃는다고요.”

집에 들어온 강도 달래서 내보내

그런데 왜 도둑을 맞았습니까? 도둑은 누구 집인지 몰랐던 모양이죠?
“하하. 그건 청담동에 살 때지요. 대낮에 도둑이 아니라 강도가 들어왔어요. 그때가 84년인데, 회사도 무척 어려운 고비에 있을 적인데 그날 아는 분의 개업식에 참석했다가 12시쯤 집에 왔을 거예요. 근데 안에서 아줌마가 안 열고 영감님이 대문 스위치를 눌러서 열어주신단 말예요. 순간적으로 이상했지요. 그런데 현관으로 들어가니까 영감님 목에 칼을 대고선 안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아줌마는 꽁꽁 묶여서 구석에 처박혀 있고. ‘강도가 들어왔구나!’하고 직감했지요.”

▶최남순 무궁화유지 회장

집안 사람들 때문에 신고하러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 회장은 마음을 다잡고 도둑들 앞으로 나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침착해야 하니까 핸드백까지 천천히 내려놓고 “우리는 문 열어놓고 지내도 강도 들어오는 거 모르고 살았는데, 너희가 처음이다. 첫 손님인데 가져갈 것 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웃긴다고 생각했는지 멈칫하면서 두 놈이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둘은 저쪽에서 망을 보고 있고. 근데 내가 깡패들, 소매치기들을 다뤄봤잖아요. 그래서 ‘야, 넌 인물도 잘났고 건강해 보이는데 왜 강도질을 하냐? 일자리 없으면 나한테 와’하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뱀 눈같이 계속 이렇게 쏘아보더니 얘기를 다 하고 나니까 나중엔 스르르 풀어져서 ‘아주머니, 안정제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젠 됐다 싶었어요. 그래서 얼른 다가앉으면서 ‘안정제는 무슨 안정제냐, 괜찮아. 다 가져가. 우리 집에 보물 같은 건 없다. 보물 있으면 난 너희 같은 사람 도와. 저기 서랍에 돈이 얼마 있을 거야. 그거 가져가서 장사 밑천 해.

그러고 살다 보면 불안하고 의지할 곳도 없고 뭔가 때려 부수고 싶고 그럴 때가 있지? 그땐 사고치지 말고 교회에 나가봐. 교회 나가는 데 돈 드냐? 교회가 싫으면 절에 가. 교회도 싫고 절도 싫으면 나한테 와’하면서 일장 연설을 했지요. 그랬더니 망을 보던 두 녀석이 ‘야 인마! 저년이 입으로 사람 잡는데 왜 가만있는 거야! 입 틀어막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그때 일어나는 거예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인데, 칼을 든 두 녀석이 망을 보던 둘한테 오히려 가만있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이게 기적 아니에요? 그러더니 실제로 우리 집에는 보석 같은 거 하나도 없었고 50만원인가 있었는데 그것만 털어서 갔어요.

일절 몸에는 해코지 안 하고. 근데 나가면서 ‘아줌마, 죄송해요. 개나 한두 마리 가져다가 키우세요’ 이러는 것 아니겠어요. 강도가 개 키우라네. 죄송한 거 알면 된 거잖아요. 어떤 흉악범도 사랑으로 베풀면 다 양이 되는 거예요. 그걸 경험하면서 살아왔어요. 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죠? 하하.”

이상하게 불량한 애들을 보면 무섭지가 않고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마음부터 앞선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최 회장은 마치 정리라도 하듯이 ‘마지막 역할’이라는 말로 이런 얘기를 했다.

“나도 꿈이 있거든요? 배고픈 사람 배부르게 해주고, 옷이 없어서 추운 사람은 옷 입게 해주고, 병원 못 가는 사람은 병원 가게 해주는 거예요. 너무 싱거워요? 하하. 이 꿈은 내가 죽는 날 끝날 텐데 지금은 계속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중이에요.

마음대로 먹이고 마음껏 옷 사다 입히고, 우선 가까이 있는 양로원 사람들 만나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마음껏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죠? 내가 고급 옷을 입으면 남대문이고요, 회사 다닐 적에 보통 입는 건 평화시장 거예요. 남대문 옷은 약간 비싸고 조금 나아요. 그래서 이 옷은 남대문표, 저 옷은 평화시장표, 그렇게 붙여요. 지금 이 옷도 평화시장표인데, 좋아 보이죠?”

▶최 회장의 장남인 유성수 ㈜무궁화 사장. 바이오 벤처기업을 설립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이야기는 ‘평화시장 예찬론’으로 바뀌었다. “1만2000원이면 아주 쭉 빼입는다. 아침 6시쯤 평화시장에 나가면 싸고 좋은 옷 참 많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웬만한 쇼룸에서 사 입으려면 70만~80만원 줘야 사 입거든요? 그 돈 가지면 한 100명이 사 입을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데 뭣 때문에 70만~80만원씩 옷에 처발라요? 내 생일이 되면 며느리가 한 벌씩 사오거든요? 내가 당장 갖다주라고 그래요. 며느리는 궁상떤다고 자꾸 그러는데 천성이 그러니 어떡해요.”

최 회장은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직원들한테 꼭 두 가지는 얘기를 한다’면서 그 내용을 공개했다.

“여러분은 절대 남을 꾸어줄망정 꾸러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마라. 내가 부족하지 않게 살게끔 해줄 테니 그 대신 이 회사가 아니면 일할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다오.”

“우리 회사엔 노조 없어요”

회사에서 노조와 마찰이 없습니까?
“하하. 이 공장이나 서울 본사에서 노동조합 간판 걸린 거 봤어요? 우리가 89년부터 5년 정도 소련으로 비누 수출을 잘해서 그때 이익이 무척 많이 남았어요. 그걸 전부 직원들한테 돌려줬어요. 1년에 1200%를 보너스로 주기도 했어요. 그때 돈이 좀 벌린다고 회사를 크게 늘렸으면 잘 안됐거나 문을 닫았을지도 몰라요. 왜냐, 잘 되면 직원들한테 돌려준다는 인식이 있어야지 회사만 키운다고 하면 직원들이 열심히 하겠어요? 그러면 문을 닫게 되죠. 그래서 지금도 직원들이 이익을 내면 자신들한테 돌아온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노조도 없고 열심히 일만 하는 거예요.”

아들인 유성수 사장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들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잠시 벽시계를 보더니(손목시계는 차고 있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오늘 귀국해요. 수출 때문에 여기저기 열심히 쫓아다녀요. 남들보다 일찍 여섯 살에 학교에 넣어 처음에는 잘 해낼까 걱정했는데 큰 탈 없이 잘 성장해줬어요. 그게 효도지 뭐”라면서 웃었다.

“기업 생각하면 애처로워 보이고, 경영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에 맞게 터득해 나가는 거예요. 큰아들은 서울에 있고 둘째는 공장을 맡아서 배우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터득이 아주 빨라요. 근데 너무 착해요. 좀 독하면 좋겠는데, 하하. 큰애는 고집이 있고. 큰애가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 내가 단단히 그랬어요.”

최 회장이 할 수 없는 일 중에 아들이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자 직접 들어보라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 사장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누보비앤티’라는 벤처기업을 설립, 젖소와 한우에게 먹이는 천연사료 ‘우콜’과 비타민 사료 ‘명품C’ 개발에 나섰다. 지난 7월 인하대에 7억원의 기술 이전료와 매출액의 일부를 지급하기로 하고 갯지렁이에서 추출한 효소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단다. 우콜과 명품C는 한우와 젖소에게 먹일 경우 천연비타민 우유와 고급 육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 회장은 효소분야 개발 때부터 걱정이 많았다. 연구개발비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들이 하는 것이고, 도전은 곧 희망이기 때문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격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예상하지 못했던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기도로 씻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호 객원기자·작가(leeh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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