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 조사, 후 사과" 열린우리 "한총리, 사과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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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24일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해 한명숙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날 밤 김근태 의장 등이 참석한 비공개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22일 한명숙 총리가 문화관광부를 방문해 "국민께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스럽다"고 한 발언을 사과로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한 참석자는 "회의에서 국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과해야지, 총리가 문화부를 찾아가 직원들 앞에서 한 발언은 사과가 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일치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한 총리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정국을 뒤흔드는 바다이야기의 책임 공방을 놓고 이처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간 엇박자가 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민심 이반을 막을 정부의 분명한 사과를 요구하는 반면, 청와대는 '선(先) 조사 후(後) 사과'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게이트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만에 하나 비리가 튀어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등 당.청의 입장 차는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23일 김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한 총리,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당.정.청 고위 회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이 실장은 24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전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면 (사과) 수준과 방식이 결정되는 게 사리에 맞다"고 못박았다.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사과 여부는 각종 의혹이 규명된 후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열린우리당의 비대위 회의에선 "지금은 정책 실패를 놓고 사과가 가능하지만 비리가 나오면 과연 사과로 마무리가 될 것인가" "'먼저 조사한 뒤 사과 여부를 결정한다'는 청와대의 논리는 당연하지만 과연 국민이 받아들이겠느냐"며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사태의 심각성과 대처 수위를 놓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느끼는 '위기감'이 점점 편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다만 당.청은 야당을 향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실장이 "정부.국회.사법부(검찰.경찰).언론도 '국정 4륜(輪.바퀴)'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하자, 김 원내대표도 "국회 역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당.청 갈등의 틈을 비집고 한나라당은 내각 총사퇴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대여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국정 쇄신의 새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며 "외환위기 때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국무위원들을 감옥에 보냈듯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정책 책임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병건.서승욱.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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