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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분쟁 늘어만 가는데… /「공정한 해결」 대책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환자들 잇단 법정패소에 불만/병원 찾아가 집단농성 사태/기구 설치ㆍ보상보험 도입등 시급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을 놓고 의료진의 과실여부를 따지는 환자측과 병원사이의 분쟁이 갈수록 늘고있으나 명쾌히 시비를 가려주거나 보상범위를 제시해 줄 제도나 기구가 없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환자가족들이 전국의료사고가족협의회(의가협ㆍ회장 이은정)를 만들어 집단으로 병원에서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병원측은 공권력까지 요청해 이들을 끌어내는 등 물리적 충돌과 마찰이 잦다.
특히 분쟁이 진정이나 재판으로 갈 경우 대부분 전문의료지식이 없는 환자측에 불리한 판정이 나게 돼 변호사들마저도 변론을 피하고 있어 전문가들은 공정한 분쟁처리기구 설치와 외국과 같은 의사들의 보상보험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례=지난해 11월말 서울 H병원에서 대장종양수술을 받은 주부 지향숙씨(31ㆍ서울 풍납동)는 수술 6시간만에 심장이 멎어 인공호흡으로 간신히 소생됐으나 두달째 의식을 찾지못한 상태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다.
가족들은 병원측으로부터 『회복가능성이 희박하나 수술상 문제는 없었다』는 주장을 듣고 경찰ㆍ보사부에 진정하려 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는 주위의 말에따라 포기,지씨의 회생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
또 86년6월 서울 S병원에서 턱골절상 수술을 위해 마취주사를 맞은뒤 곧바로 의식을 잃어 4년째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상태로 있는 이한진군(21ㆍ당시 고3) 가족들은 병원측으로 부터 『이군이 특이체질이어서 마취때 기관지경련을 일으켜 폐ㆍ심장에 산소공급이 중단된 상태』라는 설명을 들었다.
가족들은 그동안 정부종합청사 민원실과 대검찰청 등에 진정했으나 『의사의 과실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으며 두차례 변호사를 찾았으나 『의료사고는 패소율이 1백%에 가깝다』며 사건접수를 모두 거절했다는 것.
가족들은 병원측에 이군이 회복될때까지 치료비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병원측은 지난연말 4천여만원에 이른 치료비조로 이군집에 대한 부동산 가압류처분신청을 한 상태다.
◇문제점=82년부터 보사부와 각 시ㆍ도에 설치된 의료심사조정위원회에는 그동안 모두 11건의 의료분쟁조정이 신청됐으나 대부분 기각ㆍ반려돼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며 각 민원기관에 진정되는 매년 4백∼5백건의 의료분쟁도 거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의협에 설치된 공제회에는 지난해 3백10건이 접수돼 1백80건에 대해 보상금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분쟁 진정사건이나 재판은 의료단체의 자문을 거쳐야 하고 환자측이 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패소하는게 대부분이다.
◇대책=이같은 현실에 반발,의료사고피해자 가족들은 지난해 2월 전국의료사고가족협의회를 결성,『사고의 진상을 오도ㆍ은폐하려는 악덕의료인에게 실력으로 대항하겠다』고 밝히고 자체적으로 1백여건의 진정을 접수해 분쟁현장에 몰려가 농성을 주도,이중 10여건은 병원측으로부터 합의를 받아내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 이정빈교수(법의학)는 『의사의 자문을 거쳐야하는 진정ㆍ고소사건은 환자측에게 불리할수 밖에 없다』며 『의사와 법조계가 함께 심의하는 조정기구설치와 함께 외국과 같은 의료사고 고문변호사제 및 모든 의사들에 대한 보상보험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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