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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네 번 세탁 '직파 간첩'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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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남파한 '직파 간첩'이 노무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공안 당국에 적발됐다. 국가정보원은 7월 31일 남파간첩 정경학(48)씨를 붙잡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뒤 사건을 서울지검에 송치했다. 국정원은 21일 이 같은 내용을 국회 정보위원장 등에 보고했다.

국정원 수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35호실 소속 공작원인 정씨는 1996년 3월부터 98년 1월까지 국내에 세 차례나 침투했다. 그는 천안 성거산 공군 레이더 기지, 울진 원자력 발전소, 용산 미8군부대, 국방부와 합참 청사 등을 사진 촬영해 북한에 보고했다. 96년 3월에는 청와대 가까이 갔다가 삼엄한 경비 때문에 촬영을 포기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북한)인민무력부는 유사시 남조선 원전을 파괴하면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같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원전 사진을 촬영해 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다 96년 간첩혐의로 구속된 '깐수'사건과 비교된다.

정씨는 김일성종합대를 다닌 엘리트로 영어.태국어.중국어에 능통했다. 정씨는 주로 동남아에서 활동하면서 방글라데시.태국.중국.필리핀인으로 네 차례 국적을 옮기면서 신분을 세탁했다. 올 7월 27일 입국 당시 그는 필리핀 국적의 '켈톤 가르시아 오르테가'였다. 국정원은 99년 8월 해외 귀순자 신문 과정에서 "북한 공작원 '정 선생'이 태국 여권으로 한국에 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정씨를 추적해 왔으며, 출국 직전 서울 시내의 한 호텔 로비에서 그를 검거했다. 국정원은 정씨로부터 대북 지령 송.수신용 음어 수록 CD와 공작금 3188달러, 신분 위장용 증명서 등을 압수했다. 정씨는 간첩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북한에서 여러 차례 훈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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