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6년 헌재소장' 노림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효숙(55)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5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명되기 하루 전인 15일 밤. 이용훈 대법원장은 청와대 측으로부터 "헌재 재판관 후보를 2명 지명하셔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전까지 이 대법원장은 재판관 1명만 지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18일 "당시 대법원장께서 김종대(58) 창원지법원장과 민형기(57) 인천지법원장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연락은 이 같은 대법원장의 고민을 덜어줬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노무현 대통령은 전효숙 소장 후보자의 남은 재판관 임기(3년)를 그대로 이어가도록 하고, 재판관 2명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할 생각이었다

검찰 몫 한 명(김희옥 법무부 차관)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출신 40대 변호사를 발탁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15일 오후가 되면서 급변했다. 전효숙 재판관의 소장 내정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코드 인사' 논란이 증폭됐다. 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노 대통령과 함께 민변의 창립 멤버인 40대 변호사를 기용할 경우 '코드 인사'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대신 전 재판관을 임기 6년의 소장으로 새로 임명하면 노 대통령 퇴임 후에도 헌재가 이른바 개혁적 성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대법원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내년 3월 퇴임하는 주선회(60) 재판관 후임에 40대 변호사를 지명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효숙 소장 후보자의 임기 6년을 보장하고 40대 변호사를 합류시킴으로써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조대현 재판관, 김종대 지법원장을 포함해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4명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인적 구성은 주요 결정(전체 재판관 9명 중 6명의 합의)에 대한 '비토(veto) 그룹'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헌재의 현재 위상은 대통령 탄핵, 신행정수도 사건 등에서 보여준 합리적인 결정에 힘입은 바 크다. 앞으로 '전효숙의 헌재'는 세상을 뒤바꿀 많은 사건을 다뤄야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국민은 주목하고 있다.

문병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