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을 넓게 쓰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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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교통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93만7천6백92대를 기록했던 서울의 자동차등록대수는 하루평균 6백80여대, 한달 2만여대 이상씩 증가를 보여 연내 1백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 많은 차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출·퇴근길 서울 도심과 간선 교통로는 길이라기 보다 주차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만큼 소통정체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시경이 21일 불법 주·정차단속을 전담하는 「교통관리대」를 발족시키고 주·정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워 교통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차량을 무조건 끌어가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서울의 만성화된 차량 소통 난에 숨통을 터보려는 고육책으로 여겨진다.
경찰은 지난달 10일 불법 주·정차범칙금을 1만5천원에서 3만원으로 두배 인상한바 있다. 우리는 경찰이 범칙금인상 한달여만에 다시 이 같은 대책을 써야만 하게된 교통난의 심각성에 인식을 같이한다. 경찰의 단속이 요소요소를 적시에 감시하는 체제로 운영돼 교통체증 현상을 완화하는 실효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현재 서울의 도로율은 17·8%지만 차량통행이 어려운 폭 6m이하 골목길을 제외하면 14.6%수준이다. 선진 대도시의 20∼40% 수준에 비하면 구조적으로 교통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그러나 도로율을 1%만 늘리려해도 도심지역에서는 1조1천여억원, 변두리지역까지 계산해 평균해도 어림잡아 6천2백50억원이 든다는 계산이고 보면 차가 늘어나는데 따라 길을 넓히는 일은 어차피 한계가 있다.
방법은 좁은 길이라도 효율적으로 넓게 쓰는 것뿐이다. 이점에서 불법 주·정차는 좁은 길을 그나마 좁게 만들거나 못쓰게 만드는 반사회적 범법임이 분명하다. 특히 최근 금호동의 공장화재에서 있었던 바와 같이 비좁은 소방도로를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막아버리는 바람에 소방차접근이 어려워 진화가 늦어지고 피해가 커지는 위험성도 안고있다. 겨울철을 맞아 큰 위험이 현재도 주변에 방치돼있는 셈이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내에서 불법 주·정차로 적발되는 차량은 하루 2천여건 꼴로 21일까지 모두 1백88만5천4백12건을 기록했으며,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나 늘어난 숫자라고 한다. 불법 주·정차를 효과적으로 단속할 경우 현재 시속 18.5km 수준까지 떨어진 도심차량운행속도를 어느 정도 높일 수 있으리라는 예측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러나 불법 주·정차 단속과 병행되어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불법 주·정차를 낳는 도심등의 주차난을 완화하는 일이다. 용지난등으로 제약이 있겠지만 학교운동장 같은 빈터에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는 방안 등 주차시설 확대도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출·퇴근시간에 70%이상 혼자 타고 운행하는 자가용 승용차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시차 출근제나 한 동네 이웃끼리 돌아가며 차를 운행하거나 일정한 부담을 하고 이웃 차를 이용하는 승용차 공동 이용제도 등도 도입해 볼만하다. 보다 원천적으로는 승용차소유에 주차공간확보를 의무화하는 차고증명제도 고려해볼 수 있으리라 본다.
교통문제는 차량과 교통시설, 이용 시민등 세 요소가 복합돼 있는 만큼 종합적·체계적으로 시책이 추진되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불법 주·정차단속이 만성적인 서울교통난 해결에 당국이 본격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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