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대국으로 키운 '칭기즈칸의 성공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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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學而時習), 선진 기술 도입, 인재 육성'.

네이멍구(內蒙古)대학 교수이자 중국몽골사학회 회원인 마지(馬冀) 교수가 정리한 '칭기즈칸의 성공 비결'이다. 마 교수는 1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칭기즈칸은 교양 수준이 높지 않았고, 아는 글자도 많지 않았지만 지식인들과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들을 중시했다"고 전하고 "국적과 민족, 출신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한 게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칭기즈칸은 이들 인재로부터 스스로 배우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군사력만 앞섰지 기술 수준은 떨어졌던 몽골 제국을 위해 칭기즈칸이 깊이 생각한 결과라고 마 교수는 지적했다.

마 교수가 든 대표적인 사례가 포병부대다. 1214년 칭기즈칸은 대장 무화리탸오(木華黎挑)를 보내 날랜 병사 500명을 선발했다. 이들로 몽골 최초의 포병부대를 편성하고, 당시 과학기술 선진국이었던 금(金)나라와 서하(西夏)에서 노획한 대석포(大石砲)로 이들을 무장시켰다. 자존심을 버리고 적의 기술이라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칭기즈칸은 이와 함께 포로로 붙잡은 숙련 기술자들에게 이 포병부대의 기술과 교육을 전담시켰다. 적국의 인재를 제국의 핵심 군사 교육 포스트에 포진한 셈이다. 이를 통해 13세기의 최고 선진기술로 무장한 강력한 포병.공병부대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일단 한 지역을 점령하면 반드시 현지의 숙련 기술자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자진해 몽골군에 투항하는 기술자들에게는 특별 대우를 했다. 포로 가운데서 기술자들을 직접 가려내기도 했다.

이렇게 구성된 '다민족 포병.공병 부대'와 선진 무기 덕분에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는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선진 지역과 성채를 모조리 점령할 수 있었다고 마 교수는 강조했다.

마 교수는 칭기즈칸이 흡수한 선진 과학기술로 인해 몽골 민족의 기술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며 "당시 몽골 초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무기.장비.운송도구.공예품 등을 제조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가장 선진적인 교량과 도시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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