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사법·행정 '여성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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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입법.사법.행정의 국가 3권(權) 행사에 여성들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올 4월 한명숙 국무총리 취임에 이어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17일 최초의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됐다.

국회에선 박근혜 의원이 최근까지 제1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직을 맡아 왔다. 박 의원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하나다.

◆ 3부를 휩쓰는 여성파워=여성파워가 양적.질적으로 가장 급증하는 곳은 사법부다. 전체 대법관 9명 중 여성은 김영란 대법관(2004년 8월 임명)뿐이었으나 지난달 전수안 판사가 새롭게 대법관에 임명돼 여성 대법관 2명 시대를 열었다.

특히 법원에서는 올해 초 예비판사 임용자 92명 중 59.8%인 55명이 여성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앞선 것이다.

올해 신규 임용하는 검사직에서도 여성이 55명으로 지난해 36명보다 크게 늘었다. 신규 임용 검사 중 여성 비율도 처음으로 40%대를 돌파했다.

입법부의 여성 진출도 뚜렷하게 늘어나고 있다. 17대 국회에선 모두 39명(13%)의 여성 의원이 입성했다. 16대 국회의 16명(5%)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5.31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에서 김영순 송파구청장이 당선돼 첫 여성구청장이 탄생했다. 지방의회에서의 여성의원 비율도 2000년 3.4%보다 네 배 이상 증가한 14.5%를 기록했다.

행정부에서는 한명숙 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김선욱 법제처장을 비롯해 김상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이혜경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위원장 등 장관급 위원장이 배출됐다. 부처에서도 첫 여성부이사관, 첫 여성감사관 등 1호를 기록한 여성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전문성을 가진 여성인력이 눈에 띄게 증가한데다 여성 리더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거의 없어진 사회적 분위기 등이 이같은 현상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함 교수는 "한 총리 임명에서 보듯 여성임용이 정치적 난국을 타파하는 카드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취업.임금은 아직도 열악=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불안하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이 70%를 차지한다. 또한 여성 근로자의 3분의 2는 임시직 등의 비정규직 종사자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올 2월 발간한 '2005년 여성통계연보'에 따르면 여성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55만원(2004년)으로 남성 월평균 임금 245만5000원의 63.1%에 그쳤다.

특히 월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을 받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은 2004년 26.9%(남성 9.1%)였으나 월 300만원 이상을 받는 고임금 여성은 전체의 11.9%(남성 26.6%)에 머물렀다. 여성 근로자의 경우 3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육아와 출산으로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높고 재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민간 기업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아직은 어렵다. 노동부가 2004년 종업원 1000명 이상 사업자(354곳)를 대상으로 여성관리자를 조사한 결과 부장은 1.4%(477명)에 불과하고 차장 3.6%(1706명), 과장 5.6%(6157명)로 나타났다.

한국여성개발원 김경희 박사는 "여성파워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상징적인 몇몇 자리에 불과하다"며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와 성별에 따른 업무 차별 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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