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에 연탄 한장이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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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밑온정」이 너무 메마르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참모습이 묻혀지고 있다. 외로운 양로원, 웃음없는 고아원, 소외된 장애아 수용소 등 그늘진 이웃을 찾는 발길이 차디차게 얼어붙었다.
이처럼 세밑온정은 갈수록 잊혀지고 있으나 투기와 과소비바람은 딴세상을 이루고 있어 올세밑을 더욱 춥게 한다.
증권시장은 정부의 부양책으로 연일 북적거리고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공개됐던 「분당신도시」길에는 수십만명이 자가용을 앞세우고 몰려들었었다.
그래서 증권시장은 며칠사이 수백·수천만원을 거머쥔 투자자들로 연말을 흥청인다. 1천여만원의 아파트분양 프리미엄을 우습게 여기는 투기꾼도 헤아릴 수 없다.
한집에 자가용 2대씩 굴리는 것이 예사고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해외관광쯤은 보통이다. 여긴 겨울이니 따뜻한 동남아나 하와이등지로 한겨울속의 피서를 즐기러 가고 있다.
10여일 코스에 경비만 3백여만원이 든다. 여기에다 쇼핑비용 등을 합치면 1인당 5백여만원이 들지만 이렇게 놀러가는 관광객이 줄지어 예약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영세민의 전재산인 셋방보증금 정도는 가진 자의 용돈밖에 안 된다. 돈이 돈 같지 않게 흥청거리는데도 세밑온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익명으로, 아니면 남모르게 불우이웃을 돕기 때문일까. 서울만 해도 양로원·고아원에 익명의 온정이 답지했다는 얘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신문에도 한 줄 비치지 않았다.
기껏해야 「얼굴 내밀기」의 방문이 가끔 있을 뿐이다.
따뜻한 온정의 손길은 손을 꼽을 정도라고 하니 가슴이 저민다.
의지할 데가 없어 기쁨을 모르고 살아가는 양로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고아들, 그리고 무의탁 장애아들, 이들에게 작은 기쁨과 환한 웃음의 인정을 나눠줄 수 없을까.
양로원과 고아원들은 올겨울울 어떻게 방이나마 따뜻하게 할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다. 각박한 세태에 한숨을 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급호텔은 무슨무슨 모임이니 망년회로 예약만원이다. 불경기·경제난국이라고들 하지만 거리는 자가용차의 홍수다.
올해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그늘진 양로원과 고아원 등도 보름밖에 남지 않은 저무는 한해를 맞고 있다. 유일한 「불평등 속의 평등」이다.
그러나 이「불평등 속의 평등」은 다른 한편으로는 불우이웃의 쓰라린 아픔이며 한스런 나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동체의식의 한마음이 아픔과 한스런 나날의 이웃들을 따뜻이 안아줄 수 있다.
모두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마음의 여유에서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모아 그늘진 이웃에 온정을 보태자. 서울의 고아원에서부터 멀리 제주도의 양로원에 이르기까지 훈훈한 온정의 메아리를 이뤄보자. 개인이든, 단체이든 소박한 정성으로 말이다.
이정춘<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4동 15통2반 가릉연립 다동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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