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용산 공원화, 열린계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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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사진을 보면 용산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철로 한 가닥이 서빙고에서 빠져나와 대로를 가로질러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간다. 물자 수송을 위한 보급철로다.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매일 덜거덕거리며 지나간다. 큰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철로를 하늘에서 보면 마치 깊이 파인 주름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상처 같기도 하다.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은 미군부대는 오랫동안 서울의 도시계획을 굴절시키는 존재였다. 한강 다리 중에서 유독 동작대교는 북단 도로로 이어지지 못한 채 단절됐고, 서울역에서 동작대교를 거쳐 과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지하철 4호선이 이촌을 거쳐 원형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됐다. 일제가 대규모 군사기지를 구축한 이후 100여 년 동안 이 지역은 도심 속 군사 공간이자, 타자의 땅이었다.

바로 이곳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초대형 공원이 계획되고 있다. 도심부에 위치하는 대규모 공원은 도시 성립 초기의 계획적인 조성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례적으로 대형 역사(驛舍)나 공장.군부대가 이전할 때나 가능한데 우리도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는 그에 걸맞은 공원이 필요하다. 공원은 도시의 핵심적인 랜드마크다. 현대의 랜드마크는 반드시 인공구조물을 의미하지 않으며, 도시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적인 공간 개념이다. 용산에 세워질 공원은 서울의 역사성을 표현하고 서울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정서적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원이 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손을 떠났던 역사 공간이 우리 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는 지금, 이곳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는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많은 비용을 지급하고 돌아오는 것인 만큼 국민 모두에게 각별한 사안이다.

우선 용산을 군사 공간화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용산은 굽이굽이 이어진 산의 모양이 용의 모습과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 지형 공간을 최대한 회복하고 남산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녹지축을 복원하는 것은 공원 만들기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 인공구조물의 조성은 최소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채워 넣기'가 아니라 '비워 내기'다. 센트럴파크도 1856년 부지를 매입한 이후 건립을 시작한 지 약 20년에 걸쳐 완공됐다. 최소한의 시설을 제외하고는 미래의 몫으로 남겨두는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공원을 만드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용산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용산에 새로운 역사를 담을 수는 없다. 국민이 계획에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열린 계획' 과정이 필요하다. 공원 명칭 공모를 비롯해 다양한 국민 참여 방안이 모색되고 있지만, 공원의 기본 성격 자체도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민족 공원' '역사 공원' 등으로 국가가 미리 규정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서둘러 완결 지으려 하지 말고, 국민이 동참하는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계획 과정을 공표하고 국민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의사 결정 과정에 국민을 포함시키는 '컨설테이션' 제도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한다. 손쉽게 개발 논리가 개입되는'뚫린 계획'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가 역사를 편찬하던 시대는 지났다. 용산에 다시 쓰는 역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이 써야 한다. 용산공원화 계획 과정을 합리적 의사소통이라는 가치 체계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참여하는 공원계획, 용산을 진정한 '우리 땅'으로 회복하기 위한 길이 거기에 있다.

김현식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