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귀 무덤" 원혼 모셔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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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백년동안 돌아보는 사람없이 「원한의 땅」 일본 경도에 묻혀있던 임진왜란 때의 치욕스런 이총(귀무덤)이 내년 봄 조국의 영산 한라산 기슭으로 옮겨져 늦게나마 후손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됐다.
이 이총은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이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한국을 침공, 임진왜란(1592∼1598)을 일으키자 그 휘하의 무장들이 전공의 표시로 우리군사·국민의 목을 잘라가는 대신 귀·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풍신에게 갖고 가 전공을 인정받고 풍신의 명에 의해 묻은 곳으로, 무려 12만6천명이나 희생된 한국민족사 최대의 치욕적 사건이다.
이들 항일민족의 원혼이 환국하게 된 것은 서울 자비사 주지이자 재소자 교화사업 후원회장인 박삼중 스님이 5년전 일본 동경근처에 있는 시원 형무소의 한국인 재소자를 교화하러 갔다가 경도에 들러 이총을 보고, 우선 영혼이라도 조국으로 모셔야겠다고 결심, 그간 일본 불교계의 고승 등을 찾아 호소한데서 시작됐다.
그 결과 지난11월 한일이총영혼환국봉송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지난달 24일 처음으로 한국스님(삼중스님)에 의해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재(천도재)를 지냈고 내년4월22일에는 한국에서 스님·신도 5백명과 일본측 5백명 등 1천명의 두 나라 스님과 신도가 모여 이총영혼환국봉송 한일합동위령제를 지낸 뒤 다음날인 23일 항공편으로 혼백함과 흙을 제주로 모셔와 제주시 영평동 자비사 안 위령탑에 혼백을 모시고 거국적인 합동위령대제를 열기로 했다.
제주에 위령탑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박삼중 스님이 영혼환국문제가 합의된 후 지난9월 제주에 들렀다가 우연히 영평동 자비사를 짓고있던 사회사업가 양을산(74) 할머니를 만났는데, 양할머니가 자초지종을 듣곤 그 자리에서 50평의 사찰과 땅 1천5백평(3억원 상당)을 선뜻 헌납함으로써 가능하게 됐다.
삼중스님은 『이 거국적 위령탑이 제주에 세워지는 것은 양보살의 덕』이라고 양할머니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더구나 한국을 지키는 영산인 한라산에 모시게 된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업을 뒤에서 후원한 정종련 회장(55·부산시 장전2동 산38)은 『이곳에 세계최대의 위령탑을 세워 성역화하고 일본의 잔인한 침략근성과 다시는 이러한 야만적 행위가 인간세계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의미의 관광명소를 만들어 세계인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회장은 우선 1차로 위령탑을 내년1월중 착공, 4월까지 세우고 영혼맞이 준비를 끝낸 뒤 이곳을 찾는 후손들과 외국관광객들의 휴식을 위한 시설도 손색없이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에 드는 예산은 약 20억원으로 이 돈은 뜻을 같이하는 국민과 기업인들이 합심해 조성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 오는14일 서울 해동불교신문사 앞에서 이총영가환국 위령대재봉행위원회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합동위령제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제주=신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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