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부양책보다 경기회복 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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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4월이래 9개월째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증시가 11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정부는 특별담보대출 등 10여 차례가 넘는 부양조치를 취했지만 별 뾰족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극약처방을 쓰고 말았다.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증시침체는 지난 60년대 동경올림픽을 전후해 일본이 겪었던 장기 증시불황과 비슷하다. 당시 일본이 취했던 증시 대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은 지난 63년 4월부터 65년 7월까지 26개월 간 일경다우지수가 1천6백34.37에서 1천20.49까지 37.6%(연15.8%)가 하락해 곳곳에서 투자자들의 아우성이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증시가 장기침체에 들어간 것은 동경올림픽을 전후해 급속하게 악화된 국제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긴축정책을 씀으로써 실물경기가 갑자기 위축됐으며 주식 과잉공급으로 수급이 불균형을 이룬 때문이었는데 이는 현재 우리 증시가 처해있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증시가 장기침체에 돌입하자 일본 정부·증권계·금융계·산업계는 ▲증권사에 대한 자금지원 ▲증자의 전면중단 ▲주식매입기관 설립 ▲세제개혁 등 다각적 증시부양대책을 내놓았으나 증시침체는 무려 26개월 동안이나 지속됐다.
결국 일본 증시가 침체에서 벗어나 65년 7월 이후 상승국면에 재진입 한 것은 이러한 부양대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그에 따른 경기회복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획기적인 부양책만이 증시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을 맥풀리게 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일본이 26개월 동안 취한 증시부양대책은 그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제1단계(63년 4월∼63년 말)는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증권사에 자금지원을 한다든가, 업계의 증자를 자율 조정하거나 연기하도록 한 단계로 89년 4월∼89년 말 우리 정부가 취한 부양대책과 너무나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2단계(64년 초∼말)는 주식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기관인 일본공동증권을 설립하고 증자자체를 완전 중단함으로써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고 주가가 일정수준(일경 다우지수 1천2백)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데 중점을 둔 단계다.
3단계(65년 초∼7월)에 와서야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세제를 개혁, 투자의욕을 높였으며 증권업을 이전의 등록제에서 면허제로 바꿔 증권업계의 체질을 강화하는 등 시장기반을 다지는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일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증시 장기침체 때는 증권사 및 투신사의 시장개입으로 주가를 부추기는 일시적 부양책은 한계가 있으며 증권시장 여건이 호전될 경우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데 역점을 둬야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 증시가 처해있는 여건은 당시 일본 증시와 수급구조·주식소유구조·금융긴축정책 등 몇 가지 점에서 비슷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최근 2∼3년 간 수요기반 없이 급속히 진행된 한국 증시의 공급일변도정책에 조정이 필요하며 현재 30%에도 못 미치는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또한 자금력이 약한 증권사가 증권 붐에 편승, 경영규모를 과도하게 확대하지 못하게 하고 기관투자가로서의 의무를 강화함으로써 증권사 체질을 개선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부자 거래에 대한 규제의 강화, 기업공시의 철저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동시에 이뤄져야만 자생력을 가진 건강한 증시의 기반을 다지게될 것이다. <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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