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아시안 게임 앞둔 태릉의 여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덥다고 훈련을 쉴 수 있나요. 한낮에도 선수촌 뒤 불암산에서 크로스컨트리훈련을 합니다."(이진일 육상 코치)

"대표선수라면 무더위쯤은 참고 견뎌야죠. 폭염 때문에 훈련을 줄이는 일은 없습니다."(윤상화 태권도 코치)

한낮 수은주가 섭씨 33도를 오르내리던 14일 오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12월 1~16일)을 대비해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찜통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2002년 홈에서 열린 부산 대회에서 금메달 96개로 종합 2위를 한 한국은 이번에도 일본(2002년 금 44개, 3위)을 뿌리치고 2위 수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만큼 훈련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육상 중장거리 선수들은 불암산에서 아예 살다시피 한다. '산' 예찬론자인 이진일 코치는 "낮에는 강한 햇볕을 피해서 숲 속에서 짧고 강한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오전 5시부터 2시간,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산속에서 크로스컨트리로 지구력과 심폐 강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 피로가 몰려오면 개울가에서 발을 담그며 쉬기도 한다. 점심 후 낮잠은 한 시간으로 제한했다. 이 코치는 "더운 날씨에 낮잠이 길어지면 몸이 늘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 밭'인 태권도 역시 훈련 강도는 어느 종목에 뒤지지 않는다. 새벽 훈련을 한 뒤 아침을 먹고 잠시 쉬는 게 휴식의 전부다. 오전 10시에 강한 체력훈련을 하고 오후 3시부터는 기술.전술훈련에 들어간다. 윤상화 코치는 "훈련만이 진실하다"고 말한다.

'효자 종목' 레슬링은 평소 오전 10시에 하던 오전 훈련을 6시로 당겼다. 이른 아침부터 선수촌 트랙과 불암산 크로스컨트리 코스를 달리며 지구력을 다진다. 오후 4시엔 체육관으로 옮겨 매트 위를 뒹굴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한다. 부산 대회 그레코로만형 60kg급 금메달리스트 강경일(삼성생명)은 "하루에 흘리는 땀이 족히 한 양동이는 될 것"이라며 "여름 체력훈련을 착실히 소화해 대회 2연패를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현재 태릉선수촌에는 육상.레슬링.핸드볼.역도 등 14개 종목 327명이 입촌해 있다. 선수촌 백현섭 훈련지원부장은 "도하 아시안게임 성적은 여름 훈련 강도에 달려 있다. 선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냉방, 훈련시설 개선, 식단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더위로 선수들 식욕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가니탕.황기 삼계탕.장어덮밥.추어탕 등 보양식을 하루 1끼 이상씩 공급하고 있다.

승마(서울시 승마훈련원), 골프(천안 우정힐스), 사격(청원 종합사격장), 육상(마라톤.경보, 강원도 횡계) 등 11종목은 촌외에서 훈련 중이다. 남자 농구와 여자 볼링은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있고, 유도(중국), 하키(호주) 등 7개 종목은 해외 전지훈련 중이다.

경보팀은 독특한 피서법을 사용한다. 이민호 코치는 "강훈련만을 고집할 경우 선수 컨디션을 망칠 수 있다"며 휴식시간을 이용해 근처 개울에서 낚시를 하며 피로를 푼다. 선수들로부터 인기 폭발이다.

아예 1330m 고지로 훈련장소를 옮긴 종목도 있다. 태백 분촌에서 26명이 훈련하고 있는 복싱이 대표적이다. 태백의 여름 낮 최고기온은 섭씨 20도고 아침.저녁에는 10도까지 떨어져 한기마저 느껴진다. 오인석 복싱 감독은 "서울은 너무 더워 훈련량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며 "체력 훈련하기엔 여기가 최적"이라고 말했다.

복싱에는 최근 카자흐스탄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메달 따기가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여름에 흘린 땀만큼 보상을 받는다면 금메달 두 개쯤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복싱대표팀의 기대다.

신동재 기자, 유기웅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