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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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의 문호 구양수는 자신의 문장은 삼상에 있다고 했다. 말을 타고 갈 때나 (마상), 잠자리에 들 때나 (침상), 뒷간에서 (측상) 문장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메모 지를 꺼내 방정식을 풀었다. 진화론을 쓴 다윈은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시를 지었다. 위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먼길을 가는 비행기를 타보면 테이블을 펼쳐 놓고 서류를 읽는 비즈니스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벌렁 누워 잠이나 자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한결 돋보인다. 그는 분명히 성공하고 있거나, 성공할 사람처럼 보인다.
베이컨은 그의 수상록에서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은 그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까를 궁리한다.
사람들은 지폐 한 장 가지고 벌벌 떤다. 그러나 시간은 몇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펑펑 쓴다. 정작 아까운 돈은 잃고 나서도 다시 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한번 잃고 나면 그만이다. 시간은 쉴새없이 지나간다. 프랭클린 같은 사람은 시간은 돈이라고 했다. 미국사람다운 얘기다. 시간의 낭비를 자살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영국의 문필가 G 새빌이 그랬다.
시간의 길이는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시간의 길이는 자꾸만 짧아지는 것 같다. 지금은 1억 분의 1초를 따지는 시대다. 인공위성이 날고 있을 때 지상의 관제탑에선 숨을 죽이고 원자 시계를 들여다보며 1억 분의 1초도 놓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잘못되면 우주선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반도체의 세계에선 10억 분의 1초 (나노초)를 다툰다.
조물주는 모든 인간에게 똑 같은 시간의 분량을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그 똑같은 시간들을 가지고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선다.
누가 시간을 더 적절히 이용했느냐 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열면서 우리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된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우선 정치인들은 자신의 시계를 한번쯤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 많은 말들, 그 많은 시간들을 다 어디다 버리고 아직도 5공 청산 하나 제대로 못해 세상을 이리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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