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출간 앞둔 권인숙씨 수기|성고문 당할 때 생을 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격과 자존심의 마지막 한 부분까지 갈기갈기 할퀴어 찢어놓은 인간성 말살의 범죄 부천서 성 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씨 (26)가 암울했던 80년대를 마감하며 한권의 수기를 냈다.
『하나의 벽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2백자 원고지 1천5백장 분량, 3백 페이지의 이 수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2년여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원고지를 앞에 할 때마다 가위눌린 듯 엄습해 오는 악몽들, 그리고 안개 스미듯 뼈 속 깊이까지 파고드는 무력감.
4·26총선을 앞두고 거름사 유대기 사장 (32)의 제의로 쓰기 시작한 수기는 그래서 원고를 대하는 날보다 외면하는 날이 더 많았다.
수기의 곳곳에서는 권씨가 골수 운동권보다 「끝없이 흔들리고 좌절하는 여리디 여린 한 여성」임이 진솔하게 확인되고 있다.
권씨는 자신이 유복한 가정의 막내딸로 82년 서울대 의류학과에 진학, 매일 새벽 불어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 유학과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그러나 1학년 여름 방학 때 우연히 「농활」에 참가하면서 농촌의 불평등한 삶을 눈물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2학년 때부터 열정적인 활동가가 된 그녀는 집안의 반대와 운동권 선배로부터 받은 모욕과 상처, 운동권 조직의 생리에 대한 회의로 인한 긴 방황 속에서 4학년을 맞는다.
고민 끝에 1학기말 시험을 결시, 스스로 제적생이 됨으로써 기득권을 포기했다. 이어 인천의 한 봉제 공장에 일당 2천7백원의 「시다」로 취직, 본격적인 현장 생활에 들어갔다.
신문에 가출 신고까지 내고 딸을 찾아 헤맸던 부모에게 연락마저 끊고 여러 공장을 전전하던 권씨는 86년6월4일 위장 취업 사실이 발각돼 부천 경찰서로 연행됐다.
그리고 6월7일 밤 훗날 전국을 분노로 들끓게 한 성 고문….
권씨는 괴로움을 못 이겨 신음 소리를 낸 자신을 향해 내뱉은 문귀동 형사의 『너 지금 즐기고 있냐』는 물음이 육체적 상처보다도 더 큰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문신으로 남아 있다.
『문이 이렇게 표현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인간 이기를 포기했다. 이토록 철저하게 모욕당하다니…. 차라리 그가 날 죽여주는 것이 훨씬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
인천 소년 교도소로 이감된 권씨는 동료 양심수들과 변호인에게 성 고문 사실을 폭로했고 7월3일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부모님은 극약을 먹겠다고 위협하며 눈물로 반대했지만 『그 처참함이 그 누구에게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을 끝내 이길 수 없었다.
88년4월9일 문귀동 형사는 구속됐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87년7월8일 출소 후 재야의 「간판 스타」가 돼 민중의 당 총선 지원 유세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갈등과 번민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자신의 명망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당의 요구가 또 다른 고문같이 느껴졌고 급기야는 피해의식으로까지 발전했다.
금년 10월 구로 공단 부근에 노동 인권 회관을 설립, 9월29일 결혼한 남편 김상준씨와 일하고 있는 권씨는 이제야 비로소 편협한 자의식을 극복하고 운동가로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는 이 사건과 관련된 나를 마감하고 하나의 벽을 넘어 선 새 삶을 열심히 전개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하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