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법부 신뢰 재판 불복 사태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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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 고법 부장판사 조관행(50.구속 수감)씨의 재판 개입 의혹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조씨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조씨는 4건의 형사.민사.행정소송에서 법조 브로커 김홍수(58.수감)씨 등으로부터 재판을 유리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씨의 과거 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는 진정서가 접수되고, 재판의 공정성을 따지는 전화와 진정이 잇따르면서 '사법 불신 사태'로 번지는 양상이다.

◆ 사법 불복 사태 오나=박모(54)씨는 9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조씨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판결을 문제 삼았다. "매매대금 청구소송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줘야 할 돈 일부를 수표로 줬다고 주장하며 위조 전표를 제시했는데도 재판부가 묵인하고 재판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위조 전표에 대한 사실 확인을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왜 시간 낭비를 하게 하느냐. 말도 안 되는 신청으로 재판부를 창피하게 하지 마라'는 면박만 들었다"며 "모종의 금품수수 관계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철망 제품 관련 180여 개 업체를 조합원으로 하는 한국철망공업협동조합도 조씨가 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올 6월 판결에 대한 진정서를 대법원에 이달 안에 제출할 예정이다. 조합 관계자는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에 수억원의 손해를 입힌 전직 전무이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조씨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며 "상대방 측 변호사가 조씨와 친분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에 걸려오는 전화도 부쩍 늘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평소 재판에 불만을 표하는 전화나 진정은 있었지만 조씨와 무관한 사건인데도 재판의 공정성을 묻는 전화가 평소 3~4건에서 10여 건으로 늘었다"며 "판결이 부당하다는 진정도 최근 법조 비리 사건이 알려지면서 30~40%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 진정은 어떻게 처리되나=검찰에 들어온 진정은 1주일 뒤 관련 사건 수사를 맡은 부서 등에 배당되며 내용에 따라 수사에 반영된다. 대법원에 진정을 내면 윤리감사관(부장판사)이 관련 사건 기록과 판결문 등을 검토한 뒤 진정 결과를 90일 이내에 진정인에게 통보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러나 "판결의 독립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진정보다는 항소나 상고 등 법으로 규정된 불복 절차를 따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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