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에 볼모잡힌 민생 법안|안성규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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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권이 5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예산 심의다, 법안 심의다 하며 열심히 일해도 모자랄 정기 국회인데도 도무지 헤어나올 줄을 모르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모두 2백만 건. 그러나 상임위마다 활동이 부진해 통과된 법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다.
그 중에서도 소위 정치성이 강한 안기부법·보안법·경찰중립법 등은 아예 여야가 등을 맞대고있는 형국이고 농어가 부채 탕감법·의료보험법·노동조합법도 합의의 근처에도 못 가고있는 실정이다. 교육법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농촌 발전 특조법·농어촌 공사법 등 민생 법안도 지지 부진이다.
이 모두가 『5공 청산이 안된 탓』이란다. 『정산만 되면 모든게 물 흐르듯 해결될 것』이라고들 떠든다.
그런데 5공 청산을 하겠다고 만들어 놓은 중진 회의는 뭐하나 하는 게 없다.
한달의 회동 시한을 내걸고 지금까지 4차 회담에 이르렀지만 단 한건 합의 한게 없고 그나마 다음의 회담 날짜도 못 잡고 말았다.
중진 회담 무용론이 나오는 판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자 여야는 해결할 생각 보단 대통령이 귀국 후 결단을 내려주기만 고대하고 있다.
물론 각자 할 말은 있다. 야는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다소의 어려움은 참아야할 것』이라는 말로 지지부진을 정당화하려 하고있고 여는 『야권이 저러니 어쩌겠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 변명이다.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시키지 못하듯 해야할 일을 팽개쳐 놓은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농어가 부채 경감법 한가지만 봐도 여야의 의견이 상당히 접근해 있는데 이자율 등 사소한 일로 농민에게 줄 혜택 자체를 아예 미루고 있다.
노동조합법·의료보험법도 그렇다. 수도권의 수질 오염은 어떻게되며 장애자 복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많은 민생 문제들이 속절없는 정치 싸움판에 뒷전으로 밀려있다.
5공 청산이 정치권의 무위·무능을 덮어주는 만능의 카드는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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