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통화패권 경쟁

중앙일보

입력 2021.08.19 00:43

업데이트 2021.08.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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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위안화(e-CNY)를 발행해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대다수가 디지털화폐에 관해 연구하거나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하면서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성급하기는 하지만, 올해가 인류 역사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BDC 편리하나 익명성 침해하고
금융시스템·정책 운용에 변화 초래
미·중 간 통화패권 경쟁 커질 수도
우리도 검토, 외국CBDC 대비해야

중앙은행은 디지털기술이 발전하고 민간 디지털화폐가 많아지는 현실에 대응하여 자체 디지털화폐 발행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디지털화폐는 실물화폐(동전, 지폐)와 달리 비대면·비접촉 결제에 사용할 수 있다.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나 스테이블코인(현실 자산과 액면 가치가 연동되는 암호화폐)은 신뢰성이 낮고 가치가 불안정하다. 소비자 보호에 취약하고 급격한 자금인출이 생기면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진다. 최근 머지포인트 환불 사태에서 보듯이 법적 뒷받침이 없는 민간 가상자산은 위험하다.

얼핏 생각하면 동전과 지폐 대신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사용한다고 생활이 특별하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현금은 이제 많이 쓰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민간에서 CBDC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소매(retail)’방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경제생활, 금융시스템, 경제정책 운용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우선, 개인과 기업은 거래가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익명성과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 막대한 힘을 가진 정부가 개인의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정보를 갖고 악용할 수 있다. 금융시스템에서는 일반 은행의 예금이 줄고 기존의 금융중계 역할이 대폭 축소되는 등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시행할 때 CBDC 예금 이자율을 변동시키는 등 민간 소비와 투자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도 재정정책에 CBDC를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오프라인 신청으로 신용카드, 선불카드, 상품권을 나누어 주는 복잡한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대신에 일괄적으로 중앙은행 계좌에 입금해 주거나 전자지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당장 경기 활성화를 위해 몇 개월 내로 지원금을 쓰지 않으면 잔액이 자동으로 사라지도록 만들 수도 있다. 예금통장이나 신용카드가 없는 금융소외 계층은 금융 생활이 가능해지고, 이들에게 정부가 복지 지원을 하기도 쉬워진다.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도입할 때, 충격을 완화하면서 최대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방식과 운용방법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주요국이 디지털화폐를 만들어 외국인의 사용을 허가하고 적절한 국제 기준을 마련한다면 국제 거래가 쉽고 편리해진다. 그러나, 국경 간 자금 이동이 빨라지면서 금융·외환 시장의 불안정이 커질 수 있다. 주요국의 CBDC 발행으로 미·중 간 통화패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은 세계기축통화인 달러화로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리고 있다. 국제결제통화가 없는 국가는 달러화나 미국 재무부 증권을 준비자산으로 쌓아 두고 갑작스러운 외화 부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달러 국제결제시스템을 이용하여 특정 외국인이나 외국 정부를 효과적으로 제재한다.

앞으로 디지털위안화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달러의 국제적 위상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인민은행은 7월 16일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디지털위안화를 국경 간 지급결제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다. 그동안 중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국제 결제통화와 중앙은행 준비자산에서 위안화 비중은 각각 2.5% 내외에 그친다. 달러와 유로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위안화가 국제결제통화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중국의 국경 간 자본거래에 대한 규제가 많고 통화정책과 위안화 가치에 대한 국제적 신뢰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가지려 하는 상품(통화)을 갖고 있어야 해당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으로 인해 사용자들은 달러를 위안화로 쉽게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무역·금융 거래가 많은 국가는 위안화 보유를 늘리려는 동기가 강하다. 앞으로 달러 CBDC와 위안화 CBDC 간에 통화패권 경쟁이 아시아에서 격렬해지면 한국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올해 8월 15일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미국 달러의 가치를 금에 연동(금 1온스당 35달러)하던 것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지 50주년이다. 충격적인 조치 이후, 전 세계 통화시스템과 환율의 불안정이 지속됐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면 달러 패권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CBDC는 세계 통화·금융시스템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CBDC의 장단점을 신중히 검토하여 발행을 고려하는 동시에 주요국 CBDC의 발행에 대비해야 한다. 디지털화폐의 안정적인 국제결제시스템이 만들어지도록 국제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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