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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빈손 귀국, 부실 계약, 허황된 백신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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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6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백신 전략 실패에 이어 부실 계약, 허황된 약속이 도마 위에 올랐다.[중앙포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6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백신 전략 실패에 이어 부실 계약, 허황된 약속이 도마 위에 올랐다.[중앙포토]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2000명 선까지 치솟고 백신 차질이 반복되자 정부 대표단이 지난주 미국 모더나 본사를 부랴부랴 방문하며 뭔가 문제를 해결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귀국했는데, 해명 과정에서 정부가 그동안 쉬쉬해 온 치부를 드러냈다. 당초 백신 계약이 부실했고, 구체적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정부는 허황된 약속을 계속 남발하고 있다.

정부 대표단은 그제 방미 협의 결과라면서 모더나 측이 8~9월에 물량 공급을 확대하고 9월 초 조기 공급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모더나로부터 시기와 물량에 대한 확답도 없이 “빨리 많이 보내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말만 반복해 빈손 귀국이란 지적을 받는다.

백신 초기 전략이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자 정부는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모더나 최고경영자와 통화해 4000만 회분을 앞당겨 공급받기로 했다”며 성과를 과시했다. 하지만 모더나 백신은 네 차례 펑크를 내더니 최근까지 겨우 6% 공급에 그쳤다. 월별·분기별로 백신 물량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계약 내용을 공개하라는 원성이 빗발칠 때마다 정부는 “비밀 유지 협약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미국 보건복지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계약서를 보면 계약 규모, 공급량, 단가가 공개돼 있고 시기별 도입량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EU)이 아스트라제네카와 맺은 공급 계약서에도 월별 공급량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모더나와 맺은 계약서에는 월별·분기별로 물량을 얼마씩 도입할지를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부실 계약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굴욕적 계약을 체결하고도 문제가 드러날까 봐 비밀협약이란 핑계를 내세워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처럼 백신 수급에 불투명성이 여전한데도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어제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국민 70%의 10월 접종 완료’ 목표는 기존에 확보한 백신으로 가능하다”고 또 큰소리쳤다. 당초 11월에서 10월로 목표 시점을 한 달 앞당겨 불가능한 약속을 남발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의문만 키웠다.

백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최근 6주째 매일 네 자릿수 확진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국민이 믿고 의지할 것은 백신이 사실상 유일하다. 정부는 백신 실패를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실상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허황된 약속만 남발하면 이 또한 명백한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