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에 있는 푸드갤러리 입구에 새 안내문이 붙었다.
식당엔 '접종자만 입장 가능' 안내문 #접종카드나 뉴욕시 앱 깔아 보여줘야 #"당장 힘들어도 접종률 높여야" #"손님 차별 안돼 " 반대 업소도 #논란 속 백신패스 도입 속속
앞으로 실내에서 식사하려면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급한 종이 카드를 직접 보여주거나 뉴욕시가 만든 '백신 여권'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 사용하라는 삽화도 넣었다.
이곳 김정민 부대표가 17일부터 뉴욕시가 시행하는 '백신 패스' 정책에 맞춰 준비한 것이다.
뉴욕시는 식당·헬스장·공연장 등 실내 영업장에 들어가려면, 손님이나 종업원 할 것 없이 모두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토록 했다.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없는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예외다.
본격적인 단속은 다음 달 13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지만, 김 부대표는 "손님들에게 미리 백신 패스 정책을 알리기 위해 직접 안내문을 만들어 걸었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며 뉴욕시가 식당과 상점의 영업제한을 모두 푼 게 지난 5월이다.
코리아타운에도 손님들이 부쩍 늘었는데, 지난달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다시 눈에 띄게 줄었다.
김 부대표는 "휴가철임을 고려해도 예년의 3분의 2 수준밖에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접종자 손님만 골라 받으면 영업에 더 타격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백신 패스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빨리 백신을 맞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백신 패스' 반대 업소에 응원도
그러나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길어지는 방역정책에 대한 피로감도 곳곳에서 느껴졌다.
브루클린의 카페 파스티세리아 로코코에는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이 발표된 직후, 푸드갤러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안내문이 내걸렸다.
'성별·젠더·종교·신념·나이에 따라 차별하지 않듯, 백신 접종 여부로 손님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뉴욕시의 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일종의 공개 선언이었다.
이날 만난 매장 매니저 매리 제네로소는 "시장의 발표를 듣는 순간 차별 정책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안내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단골들에게 부담 없이 오라는 취지였는데, 소문이 나면서 "응원한다"는 연락이 쇄도했다고 한다.
일부러 매출을 올려주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는데, 그만큼 시 정책에 불만인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9월부터 단속에 들어가면, 전체 실외 영업으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손님에게 접종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체된 백신 접종 속도에 강력처방 조치
뉴욕시의 '백신 패스' 정책은 미국 전체에서 첫 시도다.
병원이나 정부 기관 등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곳은 있었지만, 일반 영업장을 대상으로 한 적은 없었다.
지금 뉴욕주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주민의 비율은 58.5%(CDC 기준)다.
다른 주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50%대에 올라선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정체 상태다.
그동안 기차역이나 자연사 박물관 등 주요 관광지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료 접종을 시행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그러자 빌 더블라지오 시장이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 의무화라는 초강력 수단을 들고나온 것이다.
“장려책으론 백신 접종률 못 올려”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코리아타운에서 만난 대학생 카렌(브롱스)은 "손님 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루클린에서 만난 존 비안치는 "백신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강제는 공산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5일 맨해튼에선 공화당의 차기 뉴욕시장 후보인 커티스 슬리와가 이끄는 백신 패스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더블라지오 시장은 17일 백신 의무화 대상 시설을 박물관과 스포츠 경기장, 영화관 등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백신을 맞지 않으면 뉴욕에서의 생활을 즐길 수 없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뉴욕에 이어 샌프란시스코와 뉴올리언스 등 백신 패스를 도입하는 도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대론자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하지만 계속 퍼지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더이상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조지프 앨런 하버드대 교수(공공보건)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이제 장려책으로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백신 접종 의무화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