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가 있다. 한쪽은 180cm가 넘는 근육질의 거한, 다른 쪽은 제대로 못 먹어 허약하고 왜소한 사내다. 둘이 치고받으면 누가 이길까? 답은 뻔하다. 하지만 약골이 총을 들었다면? 국가 간 안보 문제에서 핵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비유다. 지금의 남북 관계가 딱 이 모양이다.
외교원장, 연합훈련 무용론 제기 #며칠 후 돌변해 참수훈련 등 주장 #고위층 비위만 맞추면 나라 위험
그럼에도 홍현익 신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5일 KBS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미 연합훈련은 안 해도 된다고 본다"고. 그는 외교관을 길러내고 외교 현안을 연구하는 국가기관의 수장이다. 이유는 이랬다.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로 축소됐고 군사비도 우리가 10배 이상 쓴 지 10년이 지나 재래식 군사력은 우리가 더 우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40년 이상 천착해 온 국제정치학자다. 비대칭 전력을 빠뜨리진 않았다. 홍 원장은 "우리에게 핵우산을 씌워주는 게 한·미 동맹의 역할"이라며 "그러니 국지전쟁에 대한 연습 같은 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할 때는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언론들은 이 인터뷰 중 "연합훈련을 안 해도 된다"는 대목을 뽑아 썼다.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할 때는 삼가자는 얘기였는데 아예 하지 말자는 것처럼 보도돼 꽤나 섭섭했던 모양이다. 홍 원장은 그 후 최소 세 번이나 라디오에 나와 해명도 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 또 한 번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는 "북한이 도발하면 참수훈련, 선제공격 훈련, 북한 점령 작전 등을 해버리자"는 무척 강경한 태도를 보인 탓이다. 이번에는 "홍 원장의 돌변"이란 보도가 쏟아졌다.
그의 인터뷰들을 뜯어봤다. 나름 논리는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남북 교류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하자. 그리고 북한이 도발하면 참수훈련 등을 즉각 실시하자는 거다.
하지만 홍 원장의 이런 주장은 듣기에 거북했다. 무엇보다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북 유화파인가, 아니면 강경파인가. 대화와 교류를 중시하는 유화파라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몇 발 쐈다고 참수훈련처럼 북한이 극혐하는 사안을 입에 올릴 리 없다. 강경파라면 한·미 연합훈련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그의 옛글을 뒤져봤더니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의 국가안보에 도전한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 버릇을 고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리 군도 여차하면 평양을 완전히 파괴하고… 김정은과 그의 가족의 생명을 단시간에 확보할 수 있는 참수작전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2016년 2월 정책브리핑). 영락없는 대북 강경론자다. 남북 화해를 중시하는 현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쓴 인사가 발탁됐는지 의외다.
그의 발탁을 특정 대선 후보와의 인연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나온다. 진위를 떠나 이왕 임명됐다면 부디 학자로서의 소신과 학문적 일관성을 지켜주기 바란다. 우리는 학자의 양심을 버리고 권력이 원하는 이야기만을 읊조리는 관변학자들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수치라는 2003년 이라크 침공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정보만을 올린 탓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부시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중이라며 이 나라를 쳤지만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훗날 한 미 중앙정보국(CIA) 전직 요원은 자서전을 통해 "부시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했기에 CIA도 그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부시는 꿀 발린 거짓 정보만을 들려주던 참모들 탓에 전후 14명의 미 대통령 중 트럼프와 함께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게 된 것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정권에서도 전문성과 소신보다는 특별한 인연 덕에 중책을 맡은 이가 너무 많다. 원하는 이야기만 들으려는 최고위층과 이들의 비위만 맞추려는 영혼 없는 관변 인사들이 만날 경우 이 나라가 어떤 나락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