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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정권교체 걷어차는 국민의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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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국회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후보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일 국회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후보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권교체 열망이 한때 55%였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직후 갤럽 조사에서 그랬다. 최근 조사에선 8%포인트 떨어진 47%다. 정권유지론은 꾸준히 올라 39%까지 왔다. 21%포인트 차이에서 8%로 줄었다. 겨우 넉 달 만이다. 야당이 재·보선에서 압승할 때만 해도 내년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 같았다. 야당에 매몰찬 말이지만 그새 오만해진 모습을 보면 정권교체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권, 넘겨주긴 쉬워도 쉽게 넘겨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유례없는 대표·후보 헤게모니 다툼 #당 전체가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 #정권교체 열망 사라지는 건 한순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선을 관리하는 당 대표는 공정이 생명이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이 후보가 되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내심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표가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런 인상을 주는 것조차 문제다. 대표가 되기 전 '유승민(전 의원) 대통령'을 말한 적이 있는 이 대표는 지난달엔 라디오에 나와 '오세훈 대선 차출론'을 언급했다. 이 대표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설마 가능하겠느냐"면서도 "이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차출을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여운을 버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에는 "지금 대선을 치른다면 여당에 5%포인트 정도 차이로 진다"고도 했다. 윤 전 총장의 입장에선 서운하다고 느낄 만한 상황일 수 있다. 완곡한 화법을 싫어하고 승부를 즉시 봐야 하는 게임 세대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최근 이 대표의 언행은 지나쳤다.
이 대표는 자신이 왜 대표가 됐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이준석 돌풍'의 원인은 정권교체에 목마른 보수·영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가 대표감이라기보다 이준석 대표가 되면 정권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정권교체를 위해 희생해야 보수가 산다.
윤 전 총장도 그다지 나을 게 없다. 윤 전 총장은 대표가 서울을 비운 사이 '기습 입당'한 이래 '봉사활동 보이콧' 등으로 사사건건 이 대표와 부닥쳤다. 윤 전 총장 측 인사들도 이 대표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다른 후보들을 폄하한 '돌고래·멸치' 발언의 격이 떨어졌고, 신지호 캠프 정무실장의 '탄핵' 발언은 공정을 의심받는 이 대표의 수준으로 윤 전 총장도 내려앉게 만들었다. 경선준비위의 독단이 지나친 측면이 있지만 후보라면 언제든지 준비돼 있어야 할 토론회 참석을 두고 다투는 모양새도 걱정스럽다.
두 사람뿐인가. 권한이 없다는데 일방적으로 경선 일정을 밀어붙이려 했던 경선준비위, 거기에 반대해 특정 후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최고위원들이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럴 때일수록 당 중진들이 나서 중심을 잡아야 할 테지만 중진 다수가 캠프로 가 싸우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참 딱하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야권엔 구심점이 없었다. 여당이 네 번의 선거에서 연승을 이어갈 때 '야당 복' 때문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야당은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랬던 야당에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정권교체의 희망이 보이자 무주공산인 당내에서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지금 국민의힘이다. 그 선봉에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근들이 있는 거다. 당의 한 핵심 인사는 "당 전체가 마치 권력을 넘겨받은 듯한 착각에 빠져 헤게모니 다툼에 혈안이 돼 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는 오간 데 없고 하나같이 미래 권력을 위해 지금부터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마치 대선에서 다 이긴 줄 알고 오만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보선에서 승리한 이유를 정말 잊어버렸단 말인가.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만한 여당이 싫어서였는데,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을 심판하려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됐다고 그걸 거꾸로 알고 있나. 분위기가 뒤집히는 건 한순간이다. 계속 싸워대다간 정권교체의 희망은 훅하고 날아간다.

신용호 정치에디터

신용호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