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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결송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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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해리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결송합니다’란 단어를 아시나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결혼해서 죄송하다는 신조어로, 코로나로 하객 인원이 제한되면서 예비부부가 지인들에게 초대 못 해서, 혹은 이런 때 결혼해 죄송하다고 말하며 생겨났다. 곧 예식을 앞뒀다는 글쓴이는 “결혼이 축복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 예비부부의 욕심으로 치부돼 슬프다”고 썼다.

결혼준비 인터넷 카페에도 지난해부터 고충을 호소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정부가 거리 두기 단계를 조정할 때마다 결혼식 일정이나 규모를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식을 위해서 식장뿐만이 아니라 출장음식·메이크업·드레스·사진촬영업체 등과 직간접적으로 계약을 맺는 웨딩비즈니스 특성 탓에 결혼식 연기나 취소는 곧 누군가의 금전적 손해로 연결된다. 소비자가 위약금을 내거나 업체가 손해를 감당하는 구조다. 한국예식업중앙회에 따르면 2019년 말 200여곳에 달했던 서울시 예식장은 올해 상반기 130여곳으로 감소했다.

결혼식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형평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청원 글쓴이는 “공연장은 관객 수를 5000명으로 제한하고 종교시설은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수치에 형평성 문제가 있어’ 99인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왜 결혼식장은 49인 이하인가?”라고 지적했다. 결혼식의 경우 거리 두기 3~4단계에는 뷔페를 운영하지 않고, 합창이 없고, 마스크 벗을 일 또한 없어 감염 위험 정도가 더 작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는 교회나 공연장에서 결혼하면 99명, 5000명까지 되는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이야기도 오간다.

인구 1000명당 혼인율을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조혼인율은 4.2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또한 사상 최저인 0.84였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가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간 혼인율과 출산율이 임기 내내 하락한 최초의 정부가 돼 가고 있다.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 역시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방역을 자화자찬할 때, 힘들게 결혼을 결심한 3포세대 예비부부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