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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휴일은 딴 나라 얘기"…빨간 날도 차별받는 노동자들

중앙일보

입력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권리찾기유니온 주최로 열린 '공휴일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헌법소원 청구인 박지안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권리찾기유니온 주최로 열린 '공휴일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헌법소원 청구인 박지안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거래처가 다 쉬어서 할 일이 없는데도 출근을 해야 한다. 할 일이 없으니 그날은 생산라인에 지원 보낼 예정이라고 하더라.”

30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는 A씨(27)는 광복절 대체공휴일인 16일에도 회사에 가야 한다. 그는 “휴일이라고 수당을 더 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년에는 직원 30인 미만인 사업장에도 (대체공휴일이) 적용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노동자에게 대체휴일 주도록 한 ‘공휴일에 관한 법률’이 지난 7월 7일 제정됐다.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대체공휴일을 지정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광복절·개천절·한글날이 각각 토·일요일과 겹쳐 그다음 평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됐다.

28일 vs 0일…벌어지는 유급휴일 격차

2022년 유급휴가ㆍ휴일 비교. 자료 직장갑질119

2022년 유급휴가ㆍ휴일 비교. 자료 직장갑질119

공휴일법에 따라 많은 사업장이 16일 하루를 쉬어 가게 됐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예외다. 그나마 30인 미만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에는 2022년 1월 1일부터 공휴일법이 적용될 예정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공휴일 규정, 연차유급휴가 기준 등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서다.

이렇다 보니 ‘유급휴일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22년 주 5일 근무 기준, 5인 이상 사업장의 유급휴일은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신정ㆍ석가탄신일ㆍ성탄절을 제외한 11일이다. 대선(3월 9일)과 지방선거일(6월 1일)까지 총 13일이다. 여기에 최소 15개의 연차를 더하면 유급휴가가 28일이 된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유일한 유급휴일인 5월 1일 근로자의 날도 2022년에는 일요일이기 때문에 유급일이 ‘총 0일’인 셈이다.

직장갑질119 소속 심준형 노무사는 “이미 1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였음에도 차별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면서 “대통령령인 근로기준법 시행령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막고 있는 만큼, 노동자와 노동을 존중한다는 이 정부에서 당장 내일이라도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리 빼앗는 기준이 된 숫자 ‘5’”

대체공휴일법을 두고 헌법소원을 낸 곳도 있다. 시민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 13일 공휴일법 제4조가 헌법상 휴식권ㆍ평등권ㆍ근로의 권리 등을 침해하고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 청구를 대리하는 김하경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전 국민에게 통일적인 공휴일을 제정하겠다는 공휴일법의 목적과는 반대로, 이 법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 자영업자 부담 커진다” 반론도

반면 ‘5인 미만’ 기준이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란 의견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이나 영세 기업의 경우 여건이 취약하니까 그에 대한 배려에서 ‘5인 미만’ 기준을 정부가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조그만 가게들까지 법으로 쉬라고 하면 사업주들은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한국은 5인 미만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걸 고려해서 상황에 맞게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빨간 날 놀 사람은 쉰다고 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선택의 여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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