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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일본꽃? 김원웅 추천까지…" 무궁화 변호사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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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변호사' 조민제 씨. 인터뷰 중, 고층건물 뒤켠에 꽃을 피워낸 무궁화를 찾았다. 전수진 기자

'무궁화 변호사' 조민제 씨. 인터뷰 중, 고층건물 뒤켠에 꽃을 피워낸 무궁화를 찾았다. 전수진 기자

“최근에 무궁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조민제 변호사는 명함 교환도 하기 전 대뜸 이렇게 물었다.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싱긋 웃으며 “무궁화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며 건물 주차장으로 향했다. 고층건물 사이 금 간 벽과 벽 사이, 가까스로 들어오는 볕 한 줄기를 받으며 무궁화 한 그루가 분홍빛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는 “명색이 국화(國花)인 무궁화는 정작 (한국에선) 홀대받는 경우가 많다”며 “무궁화는 미국 동부부터 유럽까지 다양한 곳에서 자생하며, 프랑스 파리 시청 앞을 장식하는 대표적 여름 정원수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볕과 물 등 환경만 잘 갖춰지면 7월부터 10월까지 꽃을 피워내는 생명력 강한 나무라는 점도 한민족과 닮았다.

조 변호사의 전문 분야는 생업으로 따지자면 기업 분쟁이지만 열정으로 꼽자면 무궁화다. 약속이 있으면 먼저 도착해 주변에 무궁화가 있는지 살피는 게 습관이다. ‘무궁화 변호사’라 할만하다.

음지에도 장하게 꽃을 피워낸 무궁화 나무. 전수진 기자

음지에도 장하게 꽃을 피워낸 무궁화 나무. 전수진 기자

그를 무궁화 변호에의 길로 뛰어들게 한 건 뭘까. 최근 수 년간이 무궁화 수난시대였기 때문이다. “무궁화는 사실 일본 꽃”이라는 주장을 펼친 책이 버젓이 판매되는 걸 보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해당 책은 김원웅 광복회장이 추천까지 했다. 조 변호사의 노력으로 해당 책은 절판됐고 김원웅 광복회장도 추천을 철회했다.

그는 “무궁화의 고향은 히말라야 인근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계 각지로 퍼졌고 한반도에선 통일신라 시대부터 국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최치원 선생이 통일신라 말기인 서기 897년, 발해와 외교전을 펼치며 당나라에 보낸 서한이 대표적이다. 최치원 선생이 초안을 잡은 외교 서한 일종인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엔 통일신라를 두고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칭한 부분이 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주친 무궁화. 주변의 키 큰 가로수엔 물주머니가 달려있었으나 무궁화는 쓸쓸했다. 전수진 기자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주친 무궁화. 주변의 키 큰 가로수엔 물주머니가 달려있었으나 무궁화는 쓸쓸했다. 전수진 기자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의 국화로서의 상징은 더욱 빛났다는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이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에 병합하면서 황실 상징인 오얏꽃은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했지만 신하들의 대례복에 수놓였던 무궁화는 쓰지 못하게 했다”며 “이후 김구 선생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은 무궁화를 민족의 꽃으로 추앙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왜 무궁화가 일본의 꽃이라는 주장이 생겨났을까. 조 변호사는 “오히려 일본에 가면 무궁화가 잘 가꿔져 있는 곳이 많다”며 “우리는 정작 애국가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해놓고 돌보지 않고 있기에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에 따라 무궁화를 방치 또는 이용하면서, 전국에 많이 심어만 놓고 방치를 했다”며 “무궁화를 학대해온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 꽃인 모란꽃은 정원에 모셔놓고 영양제 주고 키우면서 정작 무궁화는 방치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지금은 ‘무궁화 변호사’ 격이지만 식물에 대한 관심이 싹튼 건 우연한 계기였다. 경남 마산 인근 지역이 고향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변호사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맏아들의 법대 진학을 오매불망했지만 그 때문에 외려 반항심이 생긴 것. 대신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을 당했고 곡절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아버님이 ‘결국 법조인이 너의 천직이었던 거다’라며 좋아하셨다”며 웃었다.

그러다 IMF 사태 때 무리를 하다 탈이 났다. 심장 대동맥에 문제가 생겨 쓰러졌다. 의사 말을 듣고 등산을 하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걸었다.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엔 조선시대 식물한 연구서인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도 펴냈다. 내년 삼일절 즈음엔 무궁화에 대한 책도 펴내고 싶다고 한다.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며 건넨 『정원의 쓸모』라는 책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기본적으로 성심을 기울이는 활동이다. 진정한 돌봄은 상대를 수용하고, 바깥에 있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요구에 우리를 맞추고 집중하는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그의 마음이 꼭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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