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대놓고 말 못했는데…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공식화

중앙일보

입력 2021.08.11 00:02

업데이트 2021.08.1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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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0일 시작한 한·미 연합훈련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꺼내들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가 올 1월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월 당대회서 “미국 굴복시킬 것”
미군 철수 공개요구 예정된 수순

개정 당 규약에는 ‘조·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라면서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자산 철수와 미국의 대북 핵공격 포기 이행 등을 언급했는데, 김 부부장의 주한미군 철수 담화는 이에 따른 입장 표명이란 것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발표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 2일 담화와는 달리 이날 오후 조선중앙TV를 통해 담화 전문을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이는 북한이 향후 대미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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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김 위원장은 올 1월 당대회에서 최대 주적인 미국을 굴복시키겠다고 말했고, 당 규약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주한미군, 핵우산, 남침 시 미군 개입 등 미국의 근원적·군사적 위협을 제압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며 “김 부부장 담화는 앞으로 이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당시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의 불가피한 측면을 이해한다는 태도를 취한 적이 많았다. 김일성 시대인 1992년 1월 최초의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아널드 캔터 당시 미 국무부 차관에게 “북·미 수교를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당시 정상회담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인터뷰 등을 통해 “‘김 위원장이 과거에는 주한미군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의 군사적 조치를 막는 억지력의 일환이었지만 냉전이 끝나자 오히려 동북아의 군사적 안정을 유지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입장을 미국에도 밝혔는데 2000년 10월 김 위원장을 만났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도 “당시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했으며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봤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뒤엔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은 북·미 협상 교착 상황이었던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명의 성명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조건 중 하나로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했다. 진위 논란은 있지만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당시 방북 특사단 대표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연합훈련 때문에 남북관계가 단절돼선 안 된다”고 말하자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9년 북·미 협상이 결렬되자 올 1월 당 규약 개정에 이어 이날 북한의 2인자인 김여정의 입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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