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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선물' 대가는 참혹···마약상 '성매매 늪'에 빠진 그녀들

중앙일보

입력

멕시코 서북부 시날로아주(州)의 성형외과 의사 라페라 마르티네스 테라자스는 최근 여성 환자보다 보호자와 상담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신을 환자의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보호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여성을 수술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는 수술 비용을 지불했다. 마르티네스는 “두 사람 간 은밀한 거래가 짐작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 환자가 성형 수술을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AFP=연합뉴스]

한 여성 환자가 성형 수술을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AFP=연합뉴스]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의 본거지인 시날로아주가 성형 중독 문제로 곪아가고 있다. 외모를 가꾸려는 여성과 성매매를 원하는 마약 거래상 간 불법 거래가 판치면서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낳은 여성들의 성형 집착 문제를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한 패션이 유행한 뒤 성형 열풍이 불었다. 이후 미용을 목적으로 성형외과를 찾는 여성이 날로 늘었다. 성형 수술을 받는 연령대도 갈수록 어려지더니 최근에는 10대 미성년자들도 많아졌다. 받고 싶은 생일 선물 1순위가 성형 수술일 정도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방 이식의 경우 1회에 6500달러(약 740만 원)로, 오랜 기간 빈곤을 겪어 온 경제 상황에 비춰볼 때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비싼 편이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의 아내 엠마 코로넬.[UPI=연합뉴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의 아내 엠마 코로넬.[UPI=연합뉴스]

마약상들은 이런 성형 시장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수술 비용을 미끼로 여성을 유혹한 뒤 성매매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또 의사들에게는 현금 뭉치를 건네며 원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요구한다. 마약을 사고팔아 번 돈이 성형시장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마르티네스는 “한 남성은 여성 30명의 성형 비용을 지불하며 매번 자신의 말하는 대로 수술하라고 협박했다”며 “처음에는 나도 거절했다. 하지만 지역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그들의 요구를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거래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BBC에 따르면 마약상들은 집과 차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더 많은 성형을 요구한다. 두 여성의 성형 비용을 지불했다는 한 30대 마약상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빈곤이 만연한 이곳에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여성이 많다”면서 “마약상 사이에선 자신이 후원하는 여성의 외모를 놓고 경쟁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성형을 권유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약상과 한번 거래한 여성은 반복된 성형으로, 중독에 빠지고 다시 마약상에게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도망치려 하지만 때를 놓친 경우가 많다. 요구를 거부하면 마약상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2019년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와 소노라주 사이 도로에서 마약 카르텔 조직 간 벌어진 총격 싸움으로 무고한 미국인 가족 9명이 사망했다. [AFP]

2019년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와 소노라주 사이 도로에서 마약 카르텔 조직 간 벌어진 총격 싸움으로 무고한 미국인 가족 9명이 사망했다. [AFP]

실제 시날로아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총기 살해 건수가 타 지역의 두 배가 넘는데, 용의자 상당수가 마약상이었다. 피해 여성의 신체에서는 폭력과 고문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여성들이 마약상에게서 벗어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마약상의 성형 수술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여성은 “지금은 마약상이 나를 여신처럼 대해주고 있어서 거부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 지 모르겠다”며 “그와의 거래를 끊고 싶지만,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멕시코 여성 인권 변호사인 마리아 테레사 과에라는 “여성과 마약상의 불법 거래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결국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마약 범죄에 맞서 싸울 의지가 없는 국가 밑에서 보호받는 건 ‘여성’이 아니라 ‘마약’”이라며 국가 차원의 제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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