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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옷걸이로 활 쏴요" 올림픽 호황 맞은 스포츠 아카데미

중앙일보

입력

“우리 애가 옷걸이랑 어묵꼬치로 활, 화살을 만들어서 갖고 노는데 양궁에 소질이 있는 건가요?”

인천 중구에서 4년째 양궁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박종숙(57)씨는 최근 이런 문의를 부쩍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도쿄 올림픽 기간 회원이 50% 가까이 늘었다”며 “자녀가 재능이 있는지 봐달라고 찾아오는 부모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안산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안산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운동을 가르치는 학원업계가 ‘올림픽 호황’을 맞았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어린 나이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모들이 스포츠 조기 교육에 나선 것이다.

메달 딸 때마다 들썩…홈페이지 마비까지

도쿄에서 한국 선수들의 승전고가 울릴 때마다 스포츠 아카데미도 들썩였다. 특히 펜싱·양궁 등 우리가 호성적을 거둔 종목을 가르치는 학원에 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최병철펜싱클럽 관계자 김훈(30)씨는 “올림픽 전에 70~80명 정도였던 회원 수가 최근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며 “건강과 재미를 위해 취미로 시작한 회원이 많지만, 처음부터 선수를 꿈꾸고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직후 남현희 펜싱아카데미 홈페이지가 접속량 과다로 '먹통'이 됐다. 다음카페 캡처

지난달 28일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직후 남현희 펜싱아카데미 홈페이지가 접속량 과다로 '먹통'이 됐다. 다음카페 캡처

실제로 지난달 28일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낸 직후 남현희(40) 전 펜싱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학원 홈페이지가 접속량 과다로 ‘먹통’이 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가 펜싱을 해보고 싶다고 조르는데 동네에 펜싱 아카데미가 있느냐”고 묻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20대인데 국가대표 가능할까요” 이런 촌극도

올림픽뿐 아니라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스포츠 학원업계는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김씨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우리 선수들의 경기 이후 회원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 최인정, 강영미, 이혜인, 송세라(왼쪽부터)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 최인정, 강영미, 이혜인, 송세라(왼쪽부터)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일부 종목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커지면서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경기 고양시 JS펜싱클럽 관계자 김정연씨는 “지난주에 20대 중반 정도 된 여자분이 ‘자기도 지금 펜싱을 시작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봐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이 전화를 걸어온 날은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은메달을 딴 다음 날이었다.

양궁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박종숙씨도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와서 선수로 키워보고 싶다는 부모에겐 너무 늦어서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며 “우리 선수들이 잘 쏘는 걸 보고 쉽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현실을 깨닫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운동선수 이미지 제고, 생활 체육 활성화가 원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 로이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 로이터

전문가들은 운동선수의 긍정적 이미지와 생활 체육 활성화가 스포츠 조기 교육열의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또 기존처럼 학벌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게 불확실해지면서 스포츠로 눈을 돌리는 부모가 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현서 아주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축구의 손흥민 선수처럼 인기가 많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이 계속 나타나면서 운동선수가 선호 직업군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하고 생활을 꾸리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만큼 다른 분야로 자녀의 재능을 키워주려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생활 체육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가 이어지면서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교육열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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