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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제왕의 욕망 내려놓겠다 약속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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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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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첫 상원 출마 때 이런 얘기를 했다. “우연히 상원의원이 되는 경우는 없다. 어느 정도 과대망상증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능력자가 넘치지만 그래도 내가 대표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 스티븐 리빙스턴 『바이든과 오바마』) 대통령에 도전하는 이들이야 더하면 더할 터다. 스스로의 실력과 경험, 리더십, 인기에 대한 옹골찬 망상(妄想)은 모두 공통적일 터다. 하루가 달리 복잡 진화하는 세상은 그러나 한 인간의 능력, 리더십만으론 감당이 버거워진다. 소통·협치가 갈수록 중요한 시간. 아직도 ‘제왕(帝王)’ 노릇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그 망상의 정도는 극히 과대한 시대다.

막장 공방에 카리스마도 부족 #역사적 황혼에 이른 대통령제 #주자들은 제왕적 행태 끊어낼 #실천의 매니페스토 제출해야

대선 경쟁을 지켜보는 다수의 반응은 “확 끌리는 쌈박한 사람이 없다”는 것같다. 지지율 1~2위라야 20%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5년마다의 막장 공방은 또 어떤가. 정책, 약속이래야 경선 통과나 지지층 응집용 분노 촉발의 반쪽 메시지에 맴돌고 있다. 이 지루한 그들만의 독식(all or nothing) 게임은 승자 한 명이 권력을 싹쓸이하는 제도의 치명적 결함 탓. 달콤한 유혹의 파티가 막 내리면 다시 5년간 그의 오만과 독선에 노예 꼴 되는 시시포스의 형벌이 반복된다. 대통령제는 이제 역사의 황혼(黃昏)을 맞고 있다.

미국의 president를 번역한 대통령(大統領)이란 용어부터가 모두를 억누른다. 소득 100달러 시대쯤의 명칭이 아닌가. 고대 일본·중국의 장군인 통령(統領)이란 호칭이 내려오다 근대 일본이 미국의 president를 번역할 때 대(大)자까지 붙여 놓았다. 대·통·령 세 글자가 다 우악스러운 위력감을 주는 제왕의 단어다. 고종 시대 조선도 미국 대통령이라 기록하고, 임정(臨政) 때도 차용하긴 했지만 소통과 자율의 시대인 21세기와는 참으로 상극(相剋)이다.

대선 주자들에게 제안한다. 제왕 노릇 않겠다는구체적인 매니페스토를 국민에게 제출하라. 절망과 분노만을 국민에게 안겨 오다 숨이 멈춰가는 대통령 무책임제를 종식하기 위한 제도적 실천안을 내놓으라. 내각제나 이원집정제, 또는 4년 중임제, 아니면 확실한 책임총리제 등의 권력 분산 프로세스를 약속하라. 정세균 전 총리는 “4년 중임제 개헌에 성공하면 임기 1년 단축 용의가 있다”고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도 “국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하며 “차기 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줄여도 좋다”고 제안했다. 독식(獨食)의 부푼 기대 안고 있을 선두 주자들(윤석열·이재명·이낙연·최재형) 역시 눈치 보기의 어물쩍 침묵 대신 확고한 권력 분산의 청사진을 밝히는 게 역사적 도리다.

북악 궁궐 속 제왕의 착각으로 빠져들게 해 온 청와대는 어떻게 민심과의 소통 지점으로 옮길지, 대통령과 참모의 활발한 소통을 위한 청와대의 공간 재배치 역시 그 대상이다. “민정수석실을 없애겠다”는 윤석열 전 총장의 구상은 눈길이 가는 모색이다. 공포와 억압의 수단이던 검찰과 비대해진 경찰권, 공수처를 어떻게 외압 없이 독립시킬지는 으뜸의 요체다. 대다수 올곧은 현장의 기자들과 달리 인사권자 눈치에 언론을 정권 호위대로 망가뜨린 경영진의 공영방송은 즉시 시민과 저널리즘의 품에 되돌려줘야 마땅하다.

충성을 바치는 핵심 집단에만 넘치는 보상을 제공하는 게 바로 제왕의 습성이다. 100명이 있는 방 안에서 총을 쥔 5명만 확보하면 그 방을 지배하는 이치다. 5명이 총을 넘기거나 제왕에 겨누지 않게 하는 게 유일한 생존 비법. 나머지 지지자들이야 근근이 충성을 버리지 않을 정도의 보상만 쥐어준다. 적대적 집단? 공포와 형벌 뿐이다(브루수 부에노 데 메스키타, 『독재자의 핸드북』).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레닌, 카스트로, 로버트 무가베, 마르코스, 미얀마의 탄 슈웨, 북한 등. 모든 제왕적 통치의 공통점이다. 민주적 국가라도 모든 정부 요직을 같은 캠프, 이념, 진영에서만 독점한다면 이는 제왕적 독주의 전형이다. 자신이 의지하고 지지받을 핵심 집단을 온 국민으로 넓혀 나가려는 인사 탕평(蕩平)의 실천 약속은 모든 주자의 책무다. 뭘 하려고 시민사회나 시장경제에 규제만 잔뜩 늘리지도 말라. 뭘 하지 않으려는 생각의 전환, 탈제왕의 지름길이다.

승자 독식, 제로섬의 습관에서 벗어나 나누고자 하면 더욱 커지는 게 권력이다. 지금 정권 교체(49%) 대 유지(38%)는 11% 차(한국갤럽, 7월). 관망의 13%가 캐스팅 보트다.

‘원팀’ 하자며 친문, 비문 총질 바쁜 자해행위론 민주당도 희망이 없다. 국민의힘 역시 친박·비박, 친이의 고질병이 도지면 만년 야당으로 몰락할 기로다. 대선 승리를 진정 희구한다면 양측 다 ‘이재명+이낙연+α’ ‘윤석열+최재형+α’ 같은 러닝메이트 성격의 권력 분산과 나눔의 정신을 한번 성찰해 볼 시점이다. 워싱턴 중앙정치가 약했던 오바마는 경선 탈락자인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삼고초려해 승리했다. 함께 나누던 그 순간, 미국 민주당엔 두 명의 대통령이 탄생하고 있었다. 내려놓고 함께 나누려는 자, 그의 획기적인 역사적 승리에 한 표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