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금리 대출" 음험한 문자…코로나가 할퀸 서민만 노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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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 직원들이 보이스피싱 조직 및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을 정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 직원들이 보이스피싱 조직 및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을 정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창피해 가족에게도 못 알렸다” 

강원 춘천시의 한 외곽지역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최모(56·여)씨는 최근 ‘3%대 금리 최대 5000만원 대출 가능’이라고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H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이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매출 감소로 상점 운영비가 부족해진 최씨는 문자메시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대출 상담을 했다.

‘3%대 금리 최대 5000만원 대출’ 보이스피싱 적발

보이스피싱 일당은 최씨에게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 심사를 위해 H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라”고 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보낸 일명 ‘전화가로채기 앱’이었다. 이 앱을 깐 후 최씨의 휴대전화는 해킹됐고, H은행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연결됐다.

전화를 받은 조직원은 “지금 있는 대출을 모두 갚아야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기존 은행 대출을 갚기 위해 상점 근처에 온 수금책에게 물품 대금과 직원 월급 등으로 지급해야 할 1500만원을 전달했다.

최씨는 “상점 운영 문제로 급하게 돈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본 것인데 오히려 1500만원만 사기 당했다”며 “창피해 가족들에게도 알리지도 못하고 지인에게 1000만원을 빌려 급한 불만 껐다”고 말했다.

지난해 피해자만 3만1681명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 강원경찰청]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 편취수법별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편취수법별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 여파로 급전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이 늘면서 이를 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3만1681명에 달한다. 피해액은 역대 최고로 7000억원을 넘었다.

수법 또한 더욱 과감해져 수금책이 직접 돈을 받아가는 대면편취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피해자 3만1681명 중 47%(1만5111명)가 대면편취를 당했을 정도다. 이어 계좌이체가 33%(1만596명), 상품권 요구 등이 11%(3582명), 피싱혼합형이 5%(1591명) 등이다. 대면편취의 경우 2018년 2547명 수준에서 3년새 6배가량 증가했다.

전통적인 계좌이체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유령법인을 만든 뒤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여러 개 개설하는 식이다. 최근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일망타진한 대포통장 유통 범죄단체 82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인터넷에 ‘고수익알바’, ‘명의 삽니다’라는 광고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현혹한 뒤 57명에게 명의 하나당 30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유령법인 150개를 설립해 법인 명의 대포통장 320개를 개설했고,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계좌 하나당 매달 120만원을 받고 팔았다.

유령법인 세우고 대포통장 개설 

대포통장 유통 범죄단체 조직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포통장 유통 범죄단체 조직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후 보이스피싱 조직은 구입한 대포통장 계좌로 돈을 입금받았고, 피해자의 신고로 계좌가 막히면 또 다른 계좌를 구입해 사용했다. 이렇게 불법유통된 대포통장에 입금된 돈만 1조4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계좌는 107개로 피해액은 6856억원에 이른다.

강원경찰청 박근호 보이스피싱수사대장은 “최근엔 ‘고수익알바’라는 광고에 현혹돼 자신도 모르게 대포통장 개설과 수금책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가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신분증이나 통장을 타인에게 팔면 안 된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국제화되면서 전문 수사가 필요해 단기간에 검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수금책을 제외한 조직원 대부분이 중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있어 검거와 송환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이에 강원경찰청은 2019년 1월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이스피싱수사대를 창설하면서 그해 4월 중국 길림성 공안청과 보이스피싱 공동대응 협의체를 구축했다. 각 수사기관에 협력담당 전담 요원을 지정하고 범죄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고수익알바’, ‘명의 삽니다’ 주의보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 직원들이 보이스피싱 조직 및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을 옮기는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 직원들이 보이스피싱 조직 및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을 옮기는 모습. 박진호 기자

보이스피싱 피해연령별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연령별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조 효과는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 수사관 3명이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48)를 체포했다. A씨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수사기관 사칭 수법으로 3명으로부터 3억원가량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된 조직원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 입국한 B씨(26)도 A씨와 같은 조직원으로 중국에서 붙잡혀 한국으로 송환되자마자 체포됐다.

이들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은 한국과 중국 경찰 간 공조 덕분이다. 2019년 10월 중국 길림성 공안청은 보이스피싱 조직 사무실을 급습하면서 7명을 검거했다. 당시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강원경찰청에 피해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강원경찰청은 곧바로 피해자를 확보해 관련 자료를 전달했고, 이들 일당은 중국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이 날로 조직화·국제화되면서 피해금 회복이 어려워지는 만큼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 곽원섭 팀장은 “검찰·경찰·금감원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전 이체를 요구하거나 금융 거래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며 “금융사도 저리 대출 광고 문자를 보내지 않는 만큼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은 절대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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