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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감량은 퍼포먼스…이설주 총감독, 현송월은 조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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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직후부터 올해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금물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집권 직후부터 올해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금물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CNN을 시발로 국내외에 확산일로였을 당시, “아니다”라고 부정했던 인물이 있다. 국가정보원과 그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30년 이상 북한으로 녹을 먹은 곽길섭(61) 원코리아센터 대표 겸 국민대 겸임교수다. 곽 대표는 국정원 산하 연구원의 핵심 요직인 북한 실장을 역임한 자타 공인 ‘영원한 북한맨’이다. 당시 외교ㆍ안보 현장기자들에겐 익명으로라도 인용하고 싶은 취재원 수위 안에 꼭 들었던 전문가다. 그런 그가 『바이든과 김정은의 핵시계』를 이달 펴냈다. 2021년의 한여름이야말로 한반도의 앞으로의 정세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판단에서다.

곽길섭 전 국정원 소속 북한 분석관이 신간을 들어보이고 있다. [본인 제공]

곽길섭 전 국정원 소속 북한 분석관이 신간을 들어보이고 있다. [본인 제공]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확고한 국가관의 소유자다. 그러나 이념의 특정 스펙트럼에 치우쳐 색안경을 끼고 북한을 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은 물론 하되, 원문 등 원자료 분석에 근거한 냉철한 분석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며 “과대평가도 문제지만, 과소평가 역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김정은의 감량을 두고 국내에서 희화화를 포함한 이야깃거리로만 삼는 것도 그로서는 안타까운 지점이다. 그는 “북한은 우스갯거리고 낮춰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김정은의 감량은 의도된 퍼포먼스로, 주변의 주요한 두 여성인 부인 이설주가 총감독, 의전 총책임격인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이 조감독을 맡고 김정은이 주연을 맡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제아무리 젊다고 해도 곽 대표를 포함한 북한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150㎏의 체중을 두고 감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2018년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위원장.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2018년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위원장. AP=연합뉴스

지금 북한 상황은 어떨까. 왜 문재인 정부의 계속되는 러브콜을 무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욕을 주며, 미국에도 꿈쩍 않고 있는 것일까. 여러 예측이 있지만 곽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악재를 두고 김 위원장이 북한 사회를 리셋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북한은 모든 것을 철저히 연출해 대내외에 보여주는 ‘극장국가’이며, 김정은은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보려는 중”이라며 “(2011년 집권 이후)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그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고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팬데믹으로 무역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북한식 자력갱생이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동시에 핵과 미사일의 질적 및 양적 고도화를 꾀하며 다가오는 한반도의 시간에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시계가 코로나19로 멈춘 게 아니라 바지런히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예상하는 한반도 기회의 시간은 내년 겨울에서 봄 즈음이다. 우선 중국에서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곽 대표는 “2022년도는 김정은에겐 (올해 연) 8차 당 대회의 하반기 총화까지 마무리했을 시점으로, 자력갱생 리셋 여부 판단이 가능할 시점”이라며 “그 판단에 따라 대북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면 대화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즈음이면 팬데믹 역시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지고,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국내 문제에서 한숨 돌리고 대외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적기로 접어든다는 판단도 한몫한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역시 맞물려 있다.

2018년은 미몽이었다는 게 곽길섭 대표의 진단이다. 사진은 그해 9월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던 양 정상 부부의 백두산 천지 방문.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은 미몽이었다는 게 곽길섭 대표의 진단이다. 사진은 그해 9월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던 양 정상 부부의 백두산 천지 방문.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그는 “‘어게인 2018’과 같은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대화는 하되 그 방법은 당당하고 지속가능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나라를 북한에 인질로 만드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그는 “북한을 대할 때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은 국익”이라며 “북한과의 협상에 눈이 멀어 비핵화를 부분만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분식 비핵화’에 합의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며 북한의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다고 교류와 협력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미국과 공조해서 북한과 비핵화의 철칙에 대한 합의를 공고히 이뤄낸 뒤 협력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 거부할 경우에 대비한 플랜B 역시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곽 대표는 이번 책을 두고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전략 노트’라고 부르고 싶다며 “내 인생을 걸고 쓴 책”이라고 자못 비장하게 말했다. 책 첫머리에 감사의 뜻을 표한 8인 목록도 심상치 않다. 안중근 의사부터 법정 스님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친 멘토들이다. 그중 눈에 띄는 이름, 권미애 씨는 누굴까 물었다. 목소리의 비장감이 수줍음으로 바뀌더니 곽 대표는 부인 이름이라며 “마누라의 조언과 격려 없이는 내가 여기까지 못 왔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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