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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김여정·현송월 … 김정은 측근 총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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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0일 오후 싱가포르 대통령궁인 이스타나에서 리셴룽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북·미 정상 회담에 앞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난다. [EPA=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0일 오후 싱가포르 대통령궁인 이스타나에서 리셴룽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북·미 정상 회담에 앞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난다. [EPA=연합뉴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맞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싱가포르에 대외 부문의 핵심 인사들을 총출동시켰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이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이용호 외무상 등 대미외교의 주요 브레인은 물론 김성혜 통전부 과장(실장), 최강일 외무성 미국국장 대리 등 실무급 인사들도 현지에 모습을 나타냈다. 향후 북한 정권의 향배를 가늠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자세다.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창선 서기실장(국무위 부장) 등도 싱가포르에 동행했다.

싱가포르 온 김정은 #노광철 인민무력상도 동행 눈길 #“비핵화 설명 자료 가져왔을 수도” #출국 전엔 대동강수산시장 찾아 #개방 대비한 듯 “외국인에 봉사하라”

김정은 일행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인사는 북한군 서열 3위인 노광철 인민무력상이다. 노광철은 군부에선 유일하게 수행원에 포함돼 김 위원장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양자회담에 배석했다. 미국과 비핵화에 합의했을 때 북한 군부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면서 합의 이행에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군의 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원장 출신의 노광철이 비핵화 과정을 설명하거나 관련 자료를 챙겨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한국에서 얼굴이 널리 알려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도 현지 취재진의 눈에 띄었다. 현송월이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례적으로 북·미 회담장까지 나온 것과 관련해 북한이 향후 삼지연관현악단의 미국 공연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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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김 위원장은 북한 권력의 핵심들을 대거 끌고 왔지만 이날 주민들에겐 자신의 출국을 일절 알리지 않았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나 관영 조선중앙통신,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선중앙TV·라디오도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을 함구했다. 집권 후 중국을 제외한 첫 해외 방문이자 사상 최초 북·미 정상회담이지만 그 사실을 꽁꽁 숨긴 것이다. 그만큼 회담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철저한 중앙통제국가인 북한에서 최고 권력자가 며칠씩 평양을 비우고 4700㎞ 떨어진 싱가포르까지 가는 건 정치적 부담이 있다. 김 위원장이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싱가포르로 날아간 배경엔 경제에 대한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경제전문가인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정권을 넘겨받은 2011년 12월 이후 권력기반 공고화에 집중하던 김정은은 2016년 ‘5개년 경제 발전 계획’을 공표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이 계획으로 “인민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 부문 사이 균형을 보장해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성과를 내야 한다. 북한은 ‘수령은 무오류’라며 최고지도자에겐 실수나 실패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 북한에서 김정은이 주도해 세운 경제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2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김정은의 손발은 대북 경제제재에 꽁꽁 묶여 있다.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자업자득이다. 그가 국제사회의 예상보다 빨리 지난해 11월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데는 경제 발전에 대한 조바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칭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의 거래를 시작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북제재로 인해 경제 숨통이 꽉 막혀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서둘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북제재가 풀린다면 북한은 우선 연간 1조5690억원대에 달하는 광물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목표 지향형인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활성화 목표에 따라 비핵화를 더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동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김정은에게 ‘트럼프 카드(trump card·비장의 무기)’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인 셈이다.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은 실제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버렸다. 북한이 김일성 시대인 1962년 이후 내세워왔던 기조인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에서부터 이어져온 병진 노선을 폐기한 것이다. 그는 핵무력 완성으로 병진 노선은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전략적 노선으로 선언했다. 미국과의 물밑 접촉 후 변화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경제 개발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북한은 구체적 경제 개발 시간표를 내놓기 시작했다. 김정은의 고향으로 알려진 원산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개발하겠다며 내년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까지 완성하라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평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공개한 공식 활동의 핵심도 경제였다. 북한 매체들은 9일 일제히 김정은이 평양 시내에 새로 생긴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인민들이 (중략) 맛있고 영양가 높은 수산물 요리와 가공품을 봉사받게 되면 좋아할 것”이라며 “근로자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식사도 하고 (중략)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손님들에게도 봉사하라”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김정은이 “외국 손님”을 언급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김정은식 개혁·개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세기의 담판을 하기 위해 평양을 비우기 직전 마지막 행보로 경제를 택한 의도에서 북·미 회담에 임하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특별취재팀
김현기·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예영준·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정용수·이철재·전수진·유지혜·박유미·윤성민 기자, 강민석 논설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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