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전체에 땀띠"…'체감 38도' 찜통이 기숙사 청소원 일터 [르포]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5:00

업데이트 2021.07.26 14:27

“요즘은 한 시간도 안 돼서 턱에 물이 고일 정도로 땀이 나요.”

서울대학교 기숙사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1층 샤워실. 수세미로 세면대를 닦던 청소 미화원 A씨(71)가 “턱 전체에 땀띠가 났다”며 최근의 업무 환경을 설명했다. 지난 22일 오후 2시 30분쯤 기자와 만난 A씨는 연신 목장갑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한 주 내내 내려진 폭염주의보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한 마스크 착용은 미화원들의 근무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바깥 온도는 35도에서 36도를 기록했다. 체감 온도는 38도. A씨의 일터인 기숙사는 직원 휴게실 외에는 에어컨 시설이 없다. A씨는 “숲속에 있는 건물이라 바람이 잘 안 통하고 샤워실 특성상 뜨거운 열기랑 습기 때문에 너무 덥다”고 말했다.

38년 된 건물…닦이지 않는 곰팡이

925동 1층 샤워실 천장에는 잘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와 때가 끼어있다. 다른 층도 상태가 비슷했다. 정희윤 기자

925동 1층 샤워실 천장에는 잘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와 때가 끼어있다. 다른 층도 상태가 비슷했다. 정희윤 기자

20년 이상의 청소 경력이 있다는 A씨는 앞서 925동을 담당하던 미화원 이모씨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후 정식 직원이 채용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기자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A씨와 함께 925동 1층 화장실, 샤워실 그리고 조리실 청소를 했다. 청소 시작 전 고무장갑을 끼는 기자에게 A씨는 목장갑을 내밀며 “두 개 안 끼면 손에 습진 생겨서 일 못 한다”고 했다. 샤워실은 샤워 부스 4개, 세면대 6개, 화장실 2칸으로 된 구조였다. 샤워실 문은 열려있었지만, 누군가 샤워를 방금 끝낸 듯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습기가 느껴졌다.

먼저 세면대부터 변기, 벽 곳곳을 수세미를 이용해 비누칠을 시작했다. 곰팡이와 물때가 낀 틈이나 굴곡진 곳은 힘을 두배로 줘야 했다. 이후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마른걸레로 물기를 닦아냈다. A씨는 “곰팡이랑 녹슨 부분은 닦아도 그대로”라며 “건물 자체도 너무 오래됐고 환기가 안 돼서 곰팡이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925동을 포함한 기숙사 7개 동이 1983년도에 개관해 올해로 38년 됐다.

“하루 만에 혼자서 청소하기엔 무리”

925동 담당 청소 미화원 A씨가 밀대로 샤워실 거울과 벽을 비누칠하고 있다. 정희윤 기자

925동 담당 청소 미화원 A씨가 밀대로 샤워실 거울과 벽을 비누칠하고 있다. 정희윤 기자

샤워 부스에서 밀대로 거울과 벽 등 구석구석을 닦던 A씨는 기자에게 밀대를 건네며 “‘청소는 100점짜리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해도 해도 티가 안 난다”며 “오늘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해서 내일도 깨끗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조리실 청소까지 마치자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였다. A씨는 “평소에는 샤워실 하나 청소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리는데 오늘 둘이 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라며 “하루 안에 이 건물을 다 청소하는 건 무리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없고 쓰레기장 가는 길은 흙길

925동에서 쓰레기봉투를 놓으러 가는 길. 비포장 도로다. A씨는 “거리는 1분 정도로 금방인데 길이 좋지 않아서 구루마가 엎어지고 혼자 난리를 친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925동에서 쓰레기봉투를 놓으러 가는 길. 비포장 도로다. A씨는 “거리는 1분 정도로 금방인데 길이 좋지 않아서 구루마가 엎어지고 혼자 난리를 친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4층 건물인 925동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A씨는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게 힘들다”며 “쓰레기봉투를 나를 땐 더 힘들긴 하다”고 말했다. 숨진 이씨도 위층에서 나온 쓰레기를 1층으로 옮기는 일을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그 전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100L짜리 쓰레기봉투 2개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에 대부분의 학생이 종강하면서 쓰레기양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쓰레기봉투가 비싸니까 꽉꽉 채워 담으려고 하니 무거울 수밖에 없다”며 “구루마(수레)에 싣고 쓰레기장까지 끌고 간다”고 말했다. 쓰레기장은 925동에서 기자의 걸음으로 30초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흙길이라 70대 여성이 혼자 끌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A씨는 “가까운데 길이 좋지 않아서 구루마가 엎어지고 혼자 난리를 친다”며 웃기도 했다.

“휴게 공간 좋지만, 더 많아져야”

서울대 기숙사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2층에 자리한 휴게실. ‘직원 휴게실’이라고 적힌 철문을 열자 정면에 황토색 장판과 그 위에 깔려진 분홍색 매트 그리고 빨래 건조대와 각종 박스들이 보였다. 미화원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빨래 등을 널어놓는 다용도실이었다. 그 오른편에 또 다른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휴게 공간이 나왔다. 정희윤 기자

서울대 기숙사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2층에 자리한 휴게실. ‘직원 휴게실’이라고 적힌 철문을 열자 정면에 황토색 장판과 그 위에 깔려진 분홍색 매트 그리고 빨래 건조대와 각종 박스들이 보였다. 미화원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빨래 등을 널어놓는 다용도실이었다. 그 오른편에 또 다른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휴게 공간이 나왔다. 정희윤 기자

조리실 청소를 마치자 A씨는 “물 마시러 가자”며 휴게실로 이동했다. 휴게실 에어컨은 26도로 가동되고 있었다. 온돌 바닥은 보일러가 작동하고 있었다. A씨는 “휴게실이 2층이라 환기도 잘되고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컴퓨터 등 다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후 휴게실에서 만난 미화원 B씨는 “동마다 휴게실이 있는 게 아니라서 멀리 있는 동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 입구에 에어컨이 하나 있으면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화원 C씨는 “동 하나만 청소하기도 힘들다”며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어떠한 규칙에 맞춰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컨디션에 맞게 일을 해야 하는 직무인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서울대 기숙사에 따르면 관악학생생활관이 관리하는 기숙사 14개 동 중 미화원 휴게시설은 여성 휴게실 5곳, 남성 휴게실 4곳으로 총 9곳이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ㆍ운영 가이드 기준에 따라 작업공간 100m 이내에 설치돼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기숙사 관계자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83년도에 지어진 기숙사는 모두 재건축을 할 계획”이라며 “당장은 1층 현관에 대형 선풍기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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