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특별대우 받던 천재, 나이 60에 첫 고과평가 '굴욕'… 김홍도 마지막 그림

중앙일보

입력 2021.07.24 09:00

202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김홍도 '추성부도'(보물 1393호) 일부.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 '추성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가을 바람에 밖에서 들리는 스산한 소리에 관한 소회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김정연 기자

202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김홍도 '추성부도'(보물 1393호) 일부.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 '추성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가을 바람에 밖에서 들리는 스산한 소리에 관한 소회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김정연 기자

천재 화가 김홍도는 죽기 직전, 쓸쓸한 말년을 그림으로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기증전'에 나온 '추성부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21일부터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조선시대 그림은 단 두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옆에 걸린 그림은 조선 화가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다.

추성부도는 김홍도(1745~1806)가 사망하기 직전인 1805년 11월에 그린 그림이다. 추성부도 이후에는 날짜가 명기된 작품이 없어, 사실상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으로 본다.

생기 넘치는 인왕제색도 옆에서 추성부도는 쓸쓸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이수경 연구관은 “그림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있다. 말년에 아프고 가난했던 김홍도의 모습이 담긴 것”이라며 “나란히 전시된 ‘인왕제색도’를 그린 정선이 말년으로 갈수록 더 풍족하고 여유롭게 보냈던 것과 대비돼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병든 김홍도 마지막 작품

김홍도 '추성부도'. 가운데 노인은 송나라 시인 구양수를 나타냈지만 김홍도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집 주변의 나무들은 가지가 아래로 향하게 그려 겨울나무 느낌을 냈고, 색을 거의 쓰지 않았다. 텅 빈 하늘에 뜬 달은 그림의 다른 부분보다 빽빽하게 칠해 표현했다. 김정연 기자

김홍도 '추성부도'. 가운데 노인은 송나라 시인 구양수를 나타냈지만 김홍도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집 주변의 나무들은 가지가 아래로 향하게 그려 겨울나무 느낌을 냈고, 색을 거의 쓰지 않았다. 텅 빈 하늘에 뜬 달은 그림의 다른 부분보다 빽빽하게 칠해 표현했다. 김정연 기자

그림 한가운데 한 칸짜리 집이 있고, 창문을 통해 늙은 선비 한 명이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아이 한 명이 밖에서 그를 부르고 있다. ‘추성부’는 송나라 문인 구양수가 쓴 시로, 낙엽 떨어진 늦가을에 바람 소리를 들으며 떠오른 소회를 적은 글이다. '창 밖에 소리가 들려 동자에게 나가보라 하니, 동자가 돌아와 나무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고 가리켰다'는 내용이다.

‘추성부도’는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뒤, 왼쪽 한켠에 자필로 시를 써넣었다. 잎 떨어진 나무, 텅 빈 하늘에 뜬 달,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에 치우친 잎사귀 등을 메마른 붓질로 표현했다. '사각사각' 하는 건조한 가을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 그렸다.

이수미 광주박물관장은 "많은 작가들이 구양수의 시를 그림으로 그렸지만, 김홍도는 인물보다는 나무, 달빛, 어스름한 분위기를 내는 데 주목했다"며 "색을 굉장히 다채롭게 쓰는 김홍도지만 이 그림에선 거의 안쓰다시피했고, 인물의 이목구비를 몇 가지 선만으로도 잘 그리지만 여기서는 거의 표현하지 않은 내성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한가운데 그린 노인은 구양수를 나타냈지만, 김홍도 본인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경쾌한 선 어디 가고, 마른 붓질로 '사각사각' 느낌 

김홍도는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풍속화는 대부분 40대 이전에 그린 것으로 본다. 젊은 시절 그린 그림들에서 김홍도의 필치는 단단하고 정확한 '철선류'로 분류된다. 단원 김홍도, 노상 파안 (路上 破顔),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김홍도는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풍속화는 대부분 40대 이전에 그린 것으로 본다. 젊은 시절 그린 그림들에서 김홍도의 필치는 단단하고 정확한 '철선류'로 분류된다. 단원 김홍도, 노상 파안 (路上 破顔),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진준현 경기도 문화재위원(전 서울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설명에 따르면, 김홍도가 초년에 그린 풍속화들은 철사 선을 구부려 놓은 듯 정확하고 견고한 필선(철선류)이 많다.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좋은 필치로 사람을 주로 그렸다. 반면 추성부도는 산수화에 쓰이는 기법을 많이 썼고, 나무들도 먹을 적게 찍어 마른 붓질로 스치듯 그려 '부벽'(도끼로 장작을 팬 뒤 갈라진 면) 느낌을 냈다. 먹을 풍부하게 여러 겹 겹쳐 그린 여름 인왕산(인왕제색도)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구양수의 집을 둘러싼 나무들의 나뭇가지도 아래로 떨어뜨려 그리는 '해조묘법'(개 발톱처럼 아래로 향하게 하는 묘사법)을 썼다. 주로 겨울의 나무를 표현할 때 쓰는 기법이다. 그림 오른쪽의 산 능선에는 음산함을 더하는 그늘을 진하게 그렸다.

'추성부'에는 없는 학 두마리가 마당 가운데에 서서 동자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을 보고 있다. 진준현 위원은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죽음의 기운을 학 두마리가 경계하듯 바라보며 대항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림 하나로 부·명예 쌓은 천재화가

김홍도가 40대 이전 그린 풍속화들은 재기발랄한 인물표현, 다채로운 색채 사용 등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김홍도가 40대 이전 그린 풍속화들은 재기발랄한 인물표현, 다채로운 색채 사용 등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김홍도는 중인 출신으로 20대부터 왕실의 그림을 담당하는 관청인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린 천재화가였다. ‘씨름’ ‘서당’ 등 익살스럽고 쾌활한 묘사와 경쾌한 필치의 풍속화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왕실의 각종 중요 그림을 도맡아 그린 주요 화원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재호 연구사는 "김홍도는 자유재로 필법을 바꿀 수 있었다"며 "젊은 시절은 대담한 붓질, 진한 먹선에서 패기와 힘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렸고, 노년으로 갈수록 시적 정취가 강한 서정적인 그림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풍속화는 대부분 40대 이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김홍도는 중인 출신이지만 현감까지 지내면서 사회적 명예와 부를 쌓았다. 조선시대 화가는 단순 기술직에 가까운 ‘그림장이’ 취급을 받았지만, 김홍도는 그림천재였을뿐 아니라 문학적 소양도 깊고 글씨도 잘 썼다. 시와 그림을 같이 그리는 경우 화원은 그림만 그리고 글은 다른 사람이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김홍도는 추성부를 직접 그림 한 켠에 써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이재호 연구사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스스로 재능이 많아, 나중에는 자신이 양반가라는 자의식까지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정조의 눈' 역할, 평생 '고과평가 면제' 특별대우

김홍도가 1788년 정조의 명을 받아 대신 가서 보고 그린 금강산. 금강사군첩중 한면인 명경대. 중앙포토

김홍도가 1788년 정조의 명을 받아 대신 가서 보고 그린 금강산. 금강사군첩중 한면인 명경대. 중앙포토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업고 자랐다.

정조는 기존에 예조(현재의 문화부 격) 소속이었던 화원들 중 우수한 화원은 '자비대령화원'으로 뽑아, 임금 직속인 규장각 소속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김홍도는 자비대령화원에도 속하지 않은 채 열외로 활동했다. 자비대령화원들은 1년에 4번 인사고과를 위해 ‘녹취재’라는 시험을 봤지만, 김홍도는 1803년까지 평생 단 한번도 시험을 본 적이 없다.

이재호 연구사는 "정조가 금강산에 가고 싶은데 본인이 바빠서 못 가니 김홍도를 보내 그리게 했더니 카메라로 찍은 듯한 그림을 그려 올리기도 했다"며 "김홍도는 정조의 눈을 대신해서 방방곡곡을 그리고 각종 행사 그림도 그리면서 어마어마한 특별대우를 받은 천재 화가"라고 설명했다.

나이 60에 첫 시험, 천재의 가난하고 병든 노년

 김홍도의 순조 헌정 '삼공불환도'(보물 제 2000호). 1801년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해 그린 8폭 병풍 그림이다. 자신을 총애하던 정조 사망 후 1년 반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처음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가 지은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그림으로,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전원생활을 묘사했다. 사진 문화재청

김홍도의 순조 헌정 '삼공불환도'(보물 제 2000호). 1801년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해 그린 8폭 병풍 그림이다. 자신을 총애하던 정조 사망 후 1년 반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처음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가 지은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그림으로,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전원생활을 묘사했다. 사진 문화재청

그러나 김홍도를 총애했던 정조가 1800년 사망한 이후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김홍도는 1804년 5월 5일, 생애 처음 녹취재에 응하게 된다. 당시 김홍도의 나이 60세였다. 이재호 연구사는 “자존심에 상당히 스크래치가 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장진성 교수는 "1800년 정조 사망 이후 1년 반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며 "자신을 아껴주던 후견인의 사망에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생 왕실의 화원으로 일하고, 양반가의 그림 주문도 많아 부를 쌓았지만 말년엔 아들 교육비를 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졌다. 김홍도는 '추성부도'를 그린 직후의 편지에서 "아들의 교육비를 댈 수 없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할 정도로 곤궁했다.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1805년 초기 편지부터 병색에 대한 언급이 있고, 추성부도를 그릴 즈음인 11월 29일 편지에는 "가을부터 위독한 지경을 여러 차례 겪고 생사를 오락가락하였다"고 적었다.

'동짓날 3일 뒤', 날짜까지 작정하고 적은 유작

202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김홍도 '추성부도'(보물 1393호). 그림 왼편에 '추성부'를 직접 쓰고, '을축년 동짓날 3일 뒤에 단구가 그리다'라고 그림을 그린 날짜를 정확히 썼다. 김홍도는 글씨도 길고 아름답게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정연 기자

202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김홍도 '추성부도'(보물 1393호). 그림 왼편에 '추성부'를 직접 쓰고, '을축년 동짓날 3일 뒤에 단구가 그리다'라고 그림을 그린 날짜를 정확히 썼다. 김홍도는 글씨도 길고 아름답게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정연 기자

김홍도는 그림 왼편에 ‘을축년(1805년) 동짓날 3일 뒤에 단구(김홍도)가 그리다’라고 그림을 그린 날짜까지 명확하게 써넣었다. 양력으로 따지면 11월 말이다. 진준현 위원은 "보통 연도만 쓰거나 안 쓰는 경우도 많은데, 김홍도가 이 그림을 그릴 때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해두겠다'는 비장한 심경으로 그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추성부도'는 가로 2m가 넘는 큰 작품이다. 가볍게 그린 작품이 아니라, 작정하고 그린 그림이다. 1806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홍도가 죽기 직전의 병들고 쓸쓸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유작이다.

'추성부도', '인왕제색도' 등이 나온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서울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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