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재 완화를 원한다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도 알 것”이라며 “(이를 위해)뭘 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나와 있다”고 말했다. 제재 해제를 위해선 우선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돼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21~23일 방한…중앙일보 인터뷰 #“美, 북한과 대화에 열려 있어 # 시한 두지 않지만 빨리 응하길” # 北 진지하다는 신호 뭘까 묻자 # “그건 북한이 결정할 일” # 美 본토 위협만 제거 스몰 딜? # “북핵 협상, 한ㆍ일과 함께 간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오후 중구 정동 미 대사관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동의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길을 걷게 되길 바란다”고 다시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또 “북한은 코로나19 대응에 여념이 없고, 응답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다리는 데)시간의 제한이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대화 재개용 대북 인센티브나 명분 제공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답만 반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미ㆍ중 간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가.
- 핵심은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말고가 아니다. 한국은 주권국가이며, 우리는 공동의 우려에서 제기되는 이슈를 다루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양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자유와 법치라는 중요한 가치를 공유한다. 중국은 규범에 기반을 둔 질서 덕분에 지금의 개발된, 성공한 국가를 이룩했다. 그래 놓고 이제는 이 질서를 활용하지 않는 데 대해 세계 모든 국가가 우려하고 있다. 미ㆍ중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경쟁적이며 도전적인 관계이지만, 중국과 협력도 필요하다. 공통의 이해가 있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철거 압박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4년 넘도록 완전히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이 있는가.
- 사드를 여기 배치한 것은 한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며,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한ㆍ미의 국방 당국에서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만을 위한 인센티브를 고려하는가.
- 우리는 우리가 대화에 열려 있다는 점을 보여줬고, 한ㆍ일과 긴밀히 조율해 대북 정책 검토를 했다. 우리 모두 이런 접근법을 신뢰하고 있다. 북한과 대화를 위해 계속 함께 노력할 것이다.
- 북한도 자발적 고립을 깨고 나오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체면을 살리며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 북한의 마음을 읽을 순 없다. 그래서 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미국의 진정성 있는 제스처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알다시피 북한도 다른 국가들처럼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여념이 없고, 그에 필요한 자원은 우리보다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응답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제재 해제다. 이를 위해선 북한이 뭘 먼저 해야 하는가.
- 우리가 대화에 열려 있는 이유는 일단 한 공간에 들어가서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한다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이를 위해)뭘 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나와 있다.(I don’t think there’s any mystery)
- 그렇다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정말로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신호는 뭐가 될 수 있을까.
- 나로선 알 수 없다. 북한이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과의 대화에 동의하고, 매우 진지한 대화를 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길을 걷게 되길 바란다.
- 영변 핵 시설 폐기는 어떤가.
- 그렇다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 제재를 해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좋은 일인가.
- 난 언론을 사랑하지만, 협상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웃음)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할 때까지 기다려보고, 그러고 나서 어떤 조치가 더 합당한지 살펴볼 것이다.
-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미국의 인내심은 어느 정도인가.
- 시간의 제한이 있다거나, 오늘 당장 언제까지 북한이 답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했듯이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인들은 일 처리를 신속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모든 문화권 국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이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말할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는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빨리 응답하길 바란다.
- 한국에는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탄두 일부 등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 제거하고, 다른 핵무기나 단거리 미사일 등은 사실상 용인하는 이른바 ‘스몰 딜’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은데.
- 계속해서 이야기해온 대로다. 바이든 행정부가 입안한 정책은 한국, 일본과 함께 성안한 것이다. 상황의 진전이 있다고 해서 우리만 그 길을 가는 게 아니라 한국, 일본과 함께 갈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매우 투명하게 협력하고 있다. 북한과의 핵 협상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앞서 이날 오전 셔먼 부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한ㆍ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통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 추진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셔먼 부장관은 전략대화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안전하고 회복성 높은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반도체나 5G 통신기술장비와 같은 핵심 기술 분야에서 가장 높은 기준을 확실히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미ㆍ중 간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는 신기술 분야에서 한ㆍ미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셔먼 부장관의 방한 및 방일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단됐던 한ㆍ미ㆍ일 차관급 협의도 사실상 완전히 복원됐다. 셔먼 부장관은 “우리 3국 차관은 가을에 아마도 워싱턴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며, 이를 분기별로 한 번씩은 협의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